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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92
한자 壬辰東萊義塚
영어의미역 Tomb of Imjin Dongnae Cemetry of Righteous Fighters
이칭/별칭 임진 전망유해지총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5[온천동 산1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731년연표보기 - 임진동래의총 조성
조성 시기/일시 1788년연표보기 - 임진동래의총 확장
이장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 임진동래의총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7-1 금강 공원으로 이장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임진동래의총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임진동래의총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금강 공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5[온천동 산17-1]지도보기
원소재지 임진 전망유해지총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3동 1458-20지도보기
성격
양식 원형 봉토분
봉분크기/묘역면적 1,600㎡[묘역 면적]|8,489㎡[보호구역 면적]
관리자 부산광역시
관리자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금강 공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동래성을 지키다가 순사한 군관민의 유해를 거둔 무덤.

[개설]

임진동래의총(壬辰東萊義塚)은 일명 ‘임진전망유해지총’이라고도 한다. 1731년(영조 7) 동래 부사 정언섭(鄭彦燮)이 조정의 허락을 받아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임진왜란의 격전지인 옛 남문 터에서 당시 전투 중 전사한 이들의 많은 유골이 포환, 화살촉과 함께 나왔다. 그중 형태가 완연한 12구의 유해와 무수한 잔해를 거두어 베와 한지로 싼 후 상자에 넣고 고을의 남쪽 삼성대(三姓臺)의 서쪽 언덕[현 내성중학교 부근]에 여섯 무덤[六塚]을 만들어 안장하였다. 무덤 앞에는 ‘임진전망유해지총비(壬辰 戰亡遺骸之塚碑)’가 있다. 그 뒤 1788년(정조 12) 동래부사 이경일(李敬一)이 성안의 우물을 파니 또 많은 유해가 나와 삼성대의 여섯 무덤 곁에 또 하나의 무덤을 더하니 일곱 무덤[七塚]이 되었다.

[위치]

임진동래의총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5[온천동] 금강 공원 안 금정사(金井寺) 옆에 위치해 있다.

[변천]

조선 시대까지는 동래부의 남쪽 삼성대의 서쪽 언덕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말에 이르러 삼성대가 토지 개간으로 헐리게 되자 유해와 비석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뒷산 영보단(永報壇) 부근[현 복천박물관 어귀]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1974년 부산광역시가 옹색한 옛터에서 지금의 금강 공원 안 금정사의 옆에 터를 마련하고 이장하여 봉분을 하나로 크게 조성하고 경내를 정화하였다.

[형태]

현재의 위치로 이장할 때 봉분 하나로 축조하고 한식(韓式) 담장을 쌓은 뒤 외삼문(外三門) 1동을 건립하였다. 묘역의 면적은 1,600㎡이다.

[현황]

부산광역시는 정화 공사를 계속하여 주위를 성역화하고, 매년 동래성의 함락일인 4월 15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와 동래문화원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자칫 없어져 버릴 상황이 있었는데도 나라를 위해 순절한 사람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후손들의 정성에 지금의 자리에서나마 추앙받고 있다. 부산광역시의 계속되는 경내 정화 사업 등이 후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며, 그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의미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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