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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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西恭介 |
영어음역 | Gonisi Gyoske |
이칭/별칭 | 소서공개(小西恭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부윤을 지낸 일본인.
[활동 사항]
고니시 교스케[小西恭介]는 1885년 9월 일본 교토 부[京都府 與謝郡 宮津町 字宮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야마구치고등학교[山口高等學校], 1910년 동경제국대학 독법과(獨法科)를 졸업하였다. 1912년 대만총독부 전매국 서기(書記)로 연초과에 근무하며 고등 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전매국 사무관으로 승진하고 뇌무과(腦務課)로 옮겼다. 1913년 9월 구미 각국으로 시찰을 떠나 1915년 귀국하였다. 1916년 6월 대만총독부 세관 사무관으로 기륭지서장(基隆支署長)을 맡았다. 1918년 7월 대만총독부 사무관 겸 공사부 사무관이 되었고 민정부(民政部) 토목국 서무 과장으로 옮겼다. 1919년 대만전력주식회사(臺灣電力株式會社) 설립 위원이 되었다.
1921년 휴직하였다가 1923년 3월 조선총독부로 옮겨 부산 부윤 정6위로 조선에 건너온 고니시 교스케는 그해 10월 10일부터 31일까지 조선수산회(朝鮮水産會)와 각도 수산회 연합회 주최로 부산에서 열린 조선 수산 공진회(朝鮮水産共進會) 사무총장을 맡아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힘썼다. 1925년 9월까지 부산 부윤으로 근무하면서 영도에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을 개설하고,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청을 부산으로 이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부산 부윤 이후 조선총독부 도 사무관이 되어 강원도 내무 부장으로 옮겼다가 철도국 참사 겸 총독부 사무관에 임명되어 총독부 관방을 지내고, 1929년 철도국 서무과 정5위 훈6등으로 퇴임하였다.
퇴임 후 부산부 초장정 2정목[현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2가]에 거주하면서 1934년 2월 재외 조선인의 보호·무육(撫育)에 관한 사무 촉탁[정5위 훈5등]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에 변호사로 등록, 변호사로 일하며 1945년 광복 때까지 부산에 거주하였다. 광복 직후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송환을 돕기 위해 설립된 부산일본인세화인회(釜山日本人世話人会) 부회장을 맡았다. 일본으로 돌아간 후 1947년 제23회 중의원 선거에 교토[京都] 2구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