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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35
한자 龍塘洞-
영어의미역 Kiln Site of Yongdanggo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산5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보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마터
지정면적 1,200㎡
소유자 개인
관리자 부산광역시 남구청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4월~9월연표보기 -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산 51
출토 유물 소장처 경남문화재연구원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 6-37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가마터.

[위치]

용당동 가마터는 홍곡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91.5m의 구릉 동쪽 사면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용당동 가마터가 공동 주택 건설 예정 부지에 포함되어 2005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1,200㎡의 면적에서 기와 가마를 비롯하여 고려 시대의 건물 터 3동, 기단 석렬(石列) 1개소, 담장 석렬 1개소, 축대 3개소, 폐기장 1기와 조선 시대의 소성 유구 3기, 민묘 1기 등이 확인되었다. 기와 가마는 유적의 남서쪽에 치우쳐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며, 가마는 경사를 이용하여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만들었다. 바닥과 벽의 아래 부분은 지하에 있고, 벽 상부와 천장은 지상에 만든 반지하식이다. 아궁이·소성실·연소부[굴뚝]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전체 길이는 4.12m이다. 조선 시대의 일반적인 기와 가마에 비해 길이가 짧다.

아궁이는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바닥을 편평하게 만들고, 직경 40~50㎝, 너비 36㎝ 크기의 긴 판석 2매를 좌우에 밀착시켜 아궁이 입구를 만들었다. 아궁이는 밝은 황색 점토와 암기와편으로 빈틈없이 막았다. 아궁이 규모는 길이 73㎝, 너비 40㎝이다. 소성실은 아궁이 바닥에서 18㎝ 높이의 단을 만든 후 굴뚝으로 연결된다. 소성실 바닥면은 아궁이와 소성실 사이 단에서 굴뚝 방향으로 약 60㎝까지는 바닥면 각도가 29°의 경사로 이어지다가 이후 아궁이까지는 약 20°의 경사를 이룬다. 소성실의 규모는 길이 218㎝, 너비 153㎝이다. 소성실의 너비는 굴뚝으로 접어들면서 50㎝ 내외로 급격하게 줄어든다. 굴뚝은 소성실 끝에서 수직으로 뚫려 있다. 굴뚝은 소성실 바닥에서 75㎝ 높이에서 시작하고, 규모는 최대 직경 28㎝, 높이 43㎝이다.

유물은 가마의 소성실과 아궁이 앞쪽에서 기와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모두 평기와로서 암키와와 수키와가 있는데 표면에는 물 손질이 되었거나 방형 격자(方形格子)·능형문(菱形文)·어골문(魚骨文)·사격자문(斜格字文) 등이 타날에 의해 시문되었다. 2점의 암키와에는 ‘동(東)’, ‘면(面)’ 자가 새겨진 명문이 확인되었다. 명문은 ‘동면(東面)’. ‘◯面’ 등 부산 동래부의 행정 방위 면을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남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기와 가마의 규모가 소형이고, 출토된 유물도 많지 않아 제대로 성격 파악이 어려우나 출토된 기와의 특징을 볼 때, 조선 시대 전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와 가마가 1기뿐이고 주변에 다른 가마가 확인되지 않아 특정 건물에 소용되는 기와를 생산한 가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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