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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20
한자 社稷洞余古主山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Sajik-dong Yeogomaeul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350-3
집필자 류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일 자정[연 1회]
신당/신체 여고 주산당|위패
시작 시기/일시 1980년 10월연표보기 - 제당 새로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옛 제당 건립
의례 장소 여고 주산당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411-3 김대건성당 옆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여고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사직동 여고 주산 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하루 자정 무렵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350-3번지에 있는 여고(余古) 주산당에서 1년에 한 번 마을의 수호신인 할배신[남신]에게 동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1740년(영조 16)의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의하면 “여고리(余古里)는 서면에 속해 있고, 관문(官門)에서 5리 거리에 위치한다.”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전 사직동의 대표적 자연 마을인 석사리여고리에는 200여 세대의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여고 마을의 제당은 원래 1898년 마을 서쪽 야산의 가운데에 있었다. 8.9㎡[2.7평]의 작은 규모로 방향은 동향이었다. 기와 위에 시멘트를 입힌 네모 지붕이었으며, 흙벽에 시멘트로 마감을 하였다. 문은 여닫이 두 짝 철제문이었고, 제단은 직사각형 나무 제상으로서 이 위에는 나무 좌대가 있었다. 이 좌대 위에 ‘주산신위(主山神位)’라는 나무 위패가 놓여 있었다. 당시의 제의 절차는 당산제→ 거릿대제의 순으로 거행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현재의 제당은 1980년 10월에 세워졌으며, 사직동 김대건성당 옆에 여고 경로당과 함께 있다. 건물 면적은 10.9㎡[3.3평]이며, 방향은 남서향이다. 전통적 기와 양식인 팔작지붕이고, 벽은 블록을 쌓아서 시멘트로 마감을 하였다. 입구의 문은 철제로 제작하였고, 문 위에는 ‘여고주산당(余古主山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슬래브로 만든 제단 위에는 ‘주산신위’라고 쓴 나무 위패가 놓여 있다.

사직동의 여고 제당과 석사 제당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여고 제당은 남신[할배신]이며, 석사 제당은 여신[할매신]이라고 한다. 거릿대제에서 모시던 돌[둘레 96㎝, 높이 58㎝]이 마을의 동북쪽 길거리에 서 있었는데, 그 옆에 히말라야삼나무와 측백나무가 있었다.

[절차]

제관은 제일 3개월 전에 선정한다. 예전에는 제관으로 선정되면 거의 1년을 금기하였으나 요즘에는 제물을 조리하는 시기와 제의가 끝난 후 보름간을 금기한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자정을 전후하여 제를 올린다. 제물의 종류와 절차는 집에서 지내는 기제사와 흡사하다. 현재는 주산제만 지내며, 소지할 때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 제가 끝나면 마을의 정갈한 사람들이 모여서 음복을 한다.

[축문]

당산제의 축문은 아래와 같다.

“유 세차 ◯◯일월◯◯초일일 유학 ◯◯◯ 감소고우/ 연년세세 호호갹출 소제신당 목욕정화/ 원월삭일 지성치제 복걸 제요거해/ 천재운소 백복운흥 일동안과/ 서민태평 근이청작 서수지천신/ 상향(維 歲次 ◯◯一月◯◯初一日 幼學 ◯◯◯ 敢昭告于/ 年年歲歲 戶戶醵出 掃除神堂 沐浴井華/ 元月朔日 至誠致祭 伏乞 除妖去害/ 天災雲消 百福雲興 一同安過/ 庶民太平 謹以淸酌 庶羞祗薦神/ 尙饗).”

[현황]

옛날에는 사직동 여고 주산 당산제에 제관만 참가를 하였으나, 요즘에는 동네의 유지들 6~7명이 참여를 한다. 제의 경비는 ‘여고 마을 관리 위원회’ 회원들의 성금으로 충당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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