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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178
한자 禹吉龍
영어음역 U Gilyong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2가 52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의사
성별
대표경력 부산한의사회 회장
출생 시기/일시 1901년 11월 18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대한한의사협회 이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대한한의사협회 이사에 임명
출생지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331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활동지 화생한의원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한의사회 - 부산광역시
활동지 대한한의사협회 - 서울특별시
묘소 부산광역시 서구

[정의]

부산 출신의 한의사.

[활동 사항]

우길용(禹吉龍)은 1901년 11월 18일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서 태어났다. 25세에 이미 위생 지도관으로 재질을 발휘한 그는 27세에 우수한 한의생(韓醫生)으로 이름을 떨쳤다. 부산에 화생한의원(華生韓醫院)을 개원한 후 한의학의 전통을 고수하고 학리적인 체계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에 부산 지역 한의사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어 부산한의사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8·15 해방 이후 우길용은 역시 부산에서 한의사로 명성을 떨치던 이우룡(李羽龍)과 함께 국민 의료법의 제정에 참여하였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하에서 천시되고 위축된 한의학을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한방의(韓方醫)를 양방의(洋方醫)와 동등한 위치로 승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길룡과 이우룡, 권의수, 윤무상, 정원희 등 한의사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1951년 9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에서 한의사 제도를 법제화한 국민 의료법이 공포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1952년 12월 10일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3가 13번지 동의제약사에서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가 창립되었다. 이에 이우룡이 초대, 2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우길용은 제2대 집행진에 경상남도 지역의 한의사회를 대표하는 이사로 참여하였다.

대한한의사협회의 중심이 서울로 이동하면서 이우룡이 회장을 사임하자, 1956년 새롭게 꾸려진 제3대 집행진에서 우길룡은 부회장으로 선임되고, 1959년 이사로 선임되어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의 한의사회를 대표하였다. 이후 우길용은 한방 의학의 이론 체계를 확립하는 데 심혈을 경주하여, 오늘과 같은 이론과 임상학적인 기술의 새로운 경지를 닦으면서 현대 의학으로 해명되지 않는 한방 의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우길룡은 바둑도 고수였으며, 한시에도 능하였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서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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