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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163
한자 統一新羅時代-土器
영어의미역 Earthenware of the Unified Silla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홍보식

[정의]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개설]

부산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통일 신라의 토기가 상당수 출토되었다. 특히 통일 신라 시대 동래군의 치소였던 동래 고읍성 터와 의 거점 취락의 하나로 추정되는 고촌리 유적에서 많은 수량의 통일 신라 토기가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연제구 연산동수영구 망미동에 걸쳐 있는 배산성지(盃山城址), 동래읍성지, 고촌리 유적 등의 생활 유적과 두구동 임석 고인돌에서 발견된 토기 가마터, 덕천동 고분군, 노포동 유물 산포지, 부산 오륜대 고분, 청강리 고분군, 교리 유적, 명례리 고분군, 기장 월드컵빌리지 조성 지역의 고분군, 연산동 고분군 등을 들 수 있다.

[토기의 분포와 종류]

1. 동래읍성지 출토 토기

토기의 종류로는 뚜껑·유개합(有蓋盒)·횡병(橫甁)[모양이 누에고치를 닮았고 주둥이가 몸통 한 가운데 있는 병]·호(壺)·옹(甕)·시루·자라병[편병(扁甁)]솥·완(碗)·주름 문병·벼루편 등이 있다. 뚜껑과 유개합의 일부는 표면에 여러 종류의 문양이 시문된 것과 무늬가 없는 것으로 구분되고, 이외의 생활 용기는 대부분 무늬가 없다. 벼루편은 여러 점 출토되었는데, 동래읍성지 Ⅱ-1지구 수혈 유구 1호에서 출토된 벼루는 물을 채우는 언강 부분만 잔존하는데, 언강 바깥 면에는 주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동래읍성지에서 벼루가 출토된 점은 이곳에서 문자 생활이 이루어졌고, 지방 행정을 위한 문서가 작성되었음을 나타내는 자료이다.

동래읍성지에서 출토된 토기 문양의 종류로는 파상문(波狀文)·점열문(點列文)·연주문(連珠文)·연속 마제형문(連續馬蹄形文)·주름문·초엽문(草葉文)·다변화문 등이 있다. 이중 가장 시기가 빠른 문양으로는 연속 마제형문을 들 수 있는데, 동래읍성지에서 출토된 연속 마제형문은 퇴화된 형식이고, 1점뿐이다. 연속 마제형문은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전반까지 유행하였고, 8세기 후반이 되면 쇠퇴하면서 사라진다. 즉 동래읍성지에서 출토된 연속 마제형문은 소멸기의 특징을 보이고, 1점뿐이라서 이 자료만으로는 동래읍성지의 조영 개시기를 논하기가 어렵다.

점열문은 아래위가 겹치도록 한 지그재그식이고, 연주문은 연주문과 연주문 사이에 마름모무늬를 배치하였다. 이러한 문양들은 9세기에 유행하는 통일 신라 토기의 문양들이다. 특히 Ⅱ-1지구 수혈 유구 1호에서 출토된 장동병(長胴甁)은 목에서 몸통 아래까지 문양이 시문되었는데, 목에는 파상문과 종집선문(縱集線文), 몸통에는 다변화문·초엽문·종집선문을 시문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동래읍성지에서 출토된 토기의 종류와 특징, 그리고 문양 종류와 형식 등을 볼 때, 동래읍성은 통일 신라 말인 9세기 전반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곳에서 출토된 암키와의 표면에 ‘동래군(東萊郡)’이란 명문이 있는데, 통일 신라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개명한 시기가 경덕왕(景德王) 16년인 756년이므로 8세기 후반 이후에 동래읍성이 축성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2. 고촌리 유적 출토 토기

고촌리 유적에서는 3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는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통일 신라 직전인 7세기 전반의 토기는 물론 통일 신라 후기인 9세기까지의 토기 수량이 많다. 출토된 토기의 종류는 완·옹·호·뚜껑·고배·합·횡병·종병·시루·보시기·손잡이 항아리[파수부옹]·주름 문병 등 다양하다. 완·옹·시루·보시기·종병 등은 표면에 문양이 없지만, 이외의 기종은 표면에 여러 종류의 문양을 시문하여 장식하였다.

장식 문양은 연속 마제형문·수적형문·화문·일조 직선의 점열문·지그재그식 점열문·국화문·사변화문·연주문·주름문 등 다양하다. 문양이 시문되지 않는 개체보다 문양이 시문된 개체 수가 많다. 토기의 종류와 각 기종의 형식 및 문양 종류 등을 볼 때, 고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지방 출토품으로서는 기종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당시의 고촌리 유적에는 상당한 세력의 집단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촌리 유적의 구상 유구에서 초현기(初現期)의 연유 도기(鉛釉陶器)가 출토되었는데, 경주 이외 지역의 생활 유구에서 처음 출토된 것이다. 이는 신라에서 연유 도기가 생산되기 시작한 시기부터 지방의 중요 지역에 보급하였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할 수 있다.

3. 임석 유적 출토 토기

임석 유적에서 확인된 8세기 후반의 토기 가마에서는 연질완(軟質碗)과 항아리가 10여 점 출토되었다. 완은 물레로 만들었고, 일상 용기로 사용된 기종이다. 연질완과 도질 항아리가 가마에서 출토된 점은 같은 가마에서 불을 조절하여 다른 질의 제품을 구웠음을 나타낸다. 이 토기 가마는 1기밖에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 가마에서 연질과 도질의 토기를 구워 유구가 위치한 인근의 촌락에 공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몇 개의 마을 단위별로 자체적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토기를 생산하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분묘 부장 토기의 기종은 유개합·병 등 아주 단순하고 출토 수량도 적은데, 이중 유개합이 다수를 차지한다. 부장용 토기 중 합은 뚜껑과 합 모두 대부분 문양이 시문되었다. 시문된 문양은 연속 마제형문·지그재그 점열문·국화문 등이다. 생활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비교할 때, 기종이 단순하고 출토 수량은 적지만, 문양이 시문되었다.

4. 연산동 고분군 출토 토기

연산동 고분군의 화장묘 장골기(藏骨器)[뼈를 보관하는 그릇]로 사용된 토기는 좁고 긴 목을 지니고 있는 횡병과 뚜껑이다. 뚜껑은 도질제이고, 외면에는 상단 4개, 하단 5개의 이중 원문이 2단으로 찍혀 있다. 유골을 담은 병은 도질 소성 제품이나 소성 정도가 양호하지 못하여 와질 소성에 가깝다. 목과 몸통 외면에는 일렬의 점원문을 돌리고 그 내부에 종 2열의 점원문으로 9칸을 구획한 후 C자문 1개, 역C자문 7개, 9자문 1개를 배치하였다. 경부에는 2열의 점원문을 X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장골기로 사용된 뚜껑과 병은 8세기 후반에 걸쳐 출토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토기의 특징]

부산 지역 통일 신라 시대 토기의 특징은 분묘 부장품보다 성곽·건물 터·주거지·도로·수혈 등 생활 관련 유적에서 출토된 일상 용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주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기종이 동래읍성지고촌리 유적에서 출토되었으며, 동일한 시기의 다른 지방에서 출토한 토기보다 장식이 많이 되었다. 경주에서 생산된 토기들이 부산 지역에 공급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부산 지역에서 고급의 토기가 생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임석 유적의 토기 가마처럼 단일의 토기 가마에서 일상 토기를 생산하여 수개의 자연 촌락에 토기를 공급한 시스템도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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