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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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時代-墳墓 |
영어의미역 | Tombs of the Goryeo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박미욱 |
[정의]
부산 지역에서 발굴된 고려 시대의 무덤 유적.
[개설]
고려 시대의 부산은 도읍지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었고, 남북국 시대 때 고려와 대립 관계였던 후백제에 속한 까닭에 개국 초기 정치적으로 소외를 당했다. 그러나 고려 중기 동래 지역의 토착 세력인 동래 정씨(東萊鄭氏)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고, 이후 인종(仁宗)[재위 1122~1146] 대에 동래현은 속현에서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으로 승격하였다. 부산에는 고려 시대의 유적이 많지 않은 편이고, 남아 있는 것도 대부분 성터나 불교 사찰이다. 또한 지배층의 무덤은 개경 인근에 모여 있어 부산 지역에서 고려 시대의 분묘를 찾기가 쉽지 않다. 2000년대 들어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 덕천동 유적 및 교리 유적에서 고려 시대의 분묘가 확인되었다.
[덕천동 유적]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 산 107-11번지 일대에 있는 덕천동 유적은 구포 왜성의 지성(枝城)으로 추정되는 곳이었으나, 발굴 조사 결과 왜성 관련 시설뿐만 아니라 삼한 시대 및 삼국 시대의 덧널묘 2기, 고려 시대 분묘 18기, 조선 시대 분묘 105기 등 여러 시대의 묘가 함께 발굴되었다. 고려 시대 분묘의 경우 확인된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는 많지 않지만 움무덤에 목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각종 청자와 도기, 구리거울, 중국 동전, 청동 수저, 청동 그릇, 동곳[상투를 튼 후에 풀어지지 않도록 위에 꽂는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양호한 상태로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다. 청자류는 압출 양각 기법의 대접과 접시, 상감 기법의 마상배(馬上杯)[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 유병, 향합[뚜껑이 달린 향 그릇], 대접, 접시 등이고, 구리거울은 원형과 방형도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부산 인근에서는 고급 청자 생산지가 확인되지 않았다. 부산에서 발굴된 청자는 색이나 형태가 전라남도 강진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과 비슷하여 강진에서 만들어진 청자가 부산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낙동강 수로를 통해 다른 지역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8기에 불과한 분묘에서 고급 유물이 다량 출토된 것은 당시 구포 지역 토호들이 높은 경제력과 사회적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묘 조성 시기는 청자와 중국 동전 등으로 미루어 12~13세기로 여겨진다.
[교리 유적]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170번지 일원에 있는 교리 유적에서는 통일 신라 시대 굴식 돌방무덤 석실 2기, 고려와 조선 시대 분묘 27기, 주거지 6기, 조선 시대 건물지 1동, 수혈(竪穴)[땅 표면에서 아래로 파 내려간 구멍] 6기, 집석(葺石) 6기, 노지(爐址)[화덕 자리] 1기, 시대 불명 유적 6기 등 여러 시대, 다양한 종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1호 분묘를 제외한 고려 및 조선의 분묘에서는 청동 숟가락 정도만 나왔는데, 숟가락 형태로 미루어 조선 시대의 민묘(民墓)로 보인다. 1호 묘의 경우 목관의 흔적은 없는 고려 시대 움무덤으로, 청자 대접과 청동 숟가락, 도기 병 등이 출토되었다. 분묘의 조성 시기는 12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