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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17
한자 先史
영어의미역 Pre-historic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배진성

[정의]

부산 지역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

[개설]

부산 지역의 선사 시대 유적은 구석기 시대 유적 4개소를 비롯하여 신석기 시대 유적 20여 개소 이상, 청동기 시대 유적 40여 개소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매장 문화재 발굴 조사에 의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온 부산 동삼동 패총 등 해안가에 위치한 조개더미[패총(貝塚)] 유적이 유명하다.

청동기 시대의 경우 도시화로 인해 소멸된 유적도 많지만 괴정동 유적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들이 알려져 있으며, 최근 부산광역시 기장군 등 도시 외곽 지역에서 발굴 조사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어, 부산 지역의 선사시대가 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

부산 지역에서 구석기 시대를 보여주는 유적으로는 청사포 유적, 노포동 유적, 좌동 구석기 유적, 중동 구석기 유적이 있다. 청사포 유적노포동 유적은 지표에서 구석기가 발견되어 구석기 시대 유적의 존재를 알 수 있을 뿐 아직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청사포 유적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2동청사포 해안 뒤편 구릉에 위치하며, 격지 석기[박편 석기(剝片石器)]와 돌날 석기[석인 석기(石刃石器)] 등이 채집되어 구석기 시대 후기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포동 유적은 고분군 발굴 조사 때에 지표에서 격지 석기 두 점이 채집되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1992년에 확인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구석기 유적중동 구석기 유적은 부산 지역은 물론 영남 지역에서 처음으로 정식 발굴 조사 된 구석기 시대 유적이다. 두 유적 모두 여러 종류의 몸돌 석기[석핵 석기(石核石器)], 격지 석기, 돌날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의 재질(材質)은 좌동 구석기 유적의 경우 이암혼펠스와 석영(石英)이 많은 반면, 중동 구석기 유적에는 석영제 석기류가 거의 없다. 좌동 구석기 유적은 7개, 중동 구석기 유적은 5개의 층(層)이 확인되었다. 모두 특별한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았고 석기 제작과 관련한 받침돌[대석(臺石)]이나 모룻돌[고석(敲石)] 등이 많이 출토되어, 석기를 제작하면서 일시적으로 거주한 야외 생활 유적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시기는 돌날 석기 및 격지 석기를 통해 구석기 시대 내에서도 가장 늦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대략적인 연대는 좌동 구석기 유적이 기원전 3만~2만 년, 중동 구석기 유적이 기원전 1만 5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부산 지역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모두 후기에 해당하고 있어, 늦어도 구석기 시대 후기에는 부산 지역 곳곳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1. 유적의 개요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는 부산 동삼동 패총, 영선동 조개더미, 암남동 조개더미, 다대포 조개더미,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 북정 조개더미, 죽곡 조개더미, 범방동 패총, 가덕도 신석기 유적 등이 있다. 유적은 대부분 해안가에 위치한 패총 유적이며 동해안 쪽보다 남해안 쪽에 더 많이 분포한다.

부산 동삼동 패총은 부산은 물론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1979년 사적 제266호로 지정되었다. 1930년에 처음 발견된 이래 1960년대의 미국인 모어(Albert Mohr)와 샘플(L.L. Sample), 1969~1971년 국립중앙박물관, 1990년대 후반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의 발굴 조사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조사되었다.

그 결과 부산 동삼동 패총은 신석기 시대 조기(早期)의 덧띠무늬 토기[융기문 토기(隆起文土器)], 전기(前期)의 눌러 찍은 무늬 토기[압인문 토기(押引文土器)], 중기(中期)의 굵은 줄무늬 토기[태선침선문 토기(太線沈線文土器)], 후기(後期)의 가는 줄무늬 토기[퇴화침선문 토기(退化沈線文土器)], 말기(末期)의 겹아가리 토기[이중구연 토기(二重口緣土器)]를 대표로 하는 5단계로 구분되어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모든 기간을 포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부산 동삼동 패총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해 기원전 5,000~4,000년부터 기원전 3,000년경까지로 추정된다.

그리고 범방동 패총은 근래에 조사된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16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덤과 화덕 자리[노지(爐址)]도 확인되었다. 부산 동삼동 패총과 마찬가지로 신석기 시대 모든 시기의 토기가 출토되어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유적임을 알 수 있다.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패총이 주로 해안가에 위치하는데 비해,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는 바위 그늘[암음(岩蔭)]에 주거(住居)와 패총이 형성되었다. 율리 유적의 시기는 동삼동이나 범방과는 달리 신석기 시대 말기가 중심이다. 그리고 다대동 봉화산 유적용호동 유물 산포지에서는 신석기 시대 후기의 돌도끼[석부(石斧)]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석기가 채집되었는데, 다른 유적과 달리 산 정상부와 구릉에 위치하고 있어 제사(祭祀)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2. 주거와 생활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의 바위 그늘 외에 움집[수혈 주거지(竪穴住居址)]은 1999년 동삼동 유적 발굴 조사에서 3기가 서로 겹쳐진 상태로 확인되었다. 움집의 모양은 사각형[방형(方形)], 직사각형[장방형(長方形)], 원형(圓形)으로 각기 다르며, 한 쪽 벽면에는 일상의 도구 등을 보관하는 선반으로 추정되는 단(段) 시설이 있다. 이러한 단 시설이 있는 주거지는 부산 주변의 남해안 지역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어,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주거지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범방동 신석기 유적에서는 야외의 화덕 자리가 여러 기 확인되었는데, 모양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모아 둥근 모양으로 깔듯이 만든 것으로 원형 집석유구(圓形集石遺構) 혹은 집석유구라고 하며, 둘째는 원형이나 사각형의 얕은 구덩이를 파고 가장자리에 돌을 돌려 만든 것으로 위석 노지(圍石爐址) 혹은 위석식 노지라고 한다. 이와 같은 화덕 자리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음식물을 조리하는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

아직 범방동 신석기 유적에서 뚜렷한 움집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야외 화덕 자리 시설로 보아, 부산 지역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집 바깥에서 음식물을 조리하면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주거와 화덕 자리를 사용하였던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수렵(狩獵), 어로(漁撈), 채집(採集), 농경(農耕) 생활을 하고 있었다.

패총에서는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각종 유물들이 출토되는데, 굴·상어·도기·대구·고래·참치 등의 각종 물고기 뼈와 함께 낚시 바늘과 작살을 비롯한 그물추[어망추(漁網錘)] 등은 신석기 시대의 활발했던 어로 활동을 보여 준다. 특히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는 토기 표면에 그물 무늬를 새긴 것도 있어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어로 활동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조개더미에서는 사슴이나 멧돼지의 뼈도 출토되어,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바닷가의 어로 활동과 육지에서의 수렵 생활을 함께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산 동삼동 패총을 비롯한 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많은 동물 유체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사슴 뼈이다. 사슴은 선사 시대 사람들에게 단백질을 제공해주며 가죽과 뼈는 다양한 생활 재료로 이용되었다. 최근 범방 유적에서는 사슴 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발견되어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게 사슴이 매우 친숙한 동물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또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는 갈돌과 갈판은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수렵·어로와 함께 채집 활동도 하였음을 말해 준다. 도토리 등의 견과류를 채집하여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일정 기간 물속에 담가 두었다가 갈돌과 갈판으로 갈아서 식용(食用)하였다.

그리고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는 불에 탄 조와 기장이 출토되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수렵·어로·채집뿐만 아니라 농경 활동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복천박물관부산 동삼동 패총의 토기 표면에 찍힌 곡물의 흔적을 분석하여 들깨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당시까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곡물로는 조, 기장, 쌀, 보리, 밀이 확인되었으며, 들깨는 부산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3. 무덤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무덤으로는 범방동 신석기 유적의 토광묘(土壙墓), 부산 동삼동 패총의 독무덤[옹관묘(甕棺墓)]과 함께 최근 가덕도 신석기 유적에서 48개체의 무덤이 확인되어 국내외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범방동 신석기 유적의 토광묘에는 인골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머리 방향은 서북쪽이며 다리는 X자 모양으로 꼬여 있었다. 키는 130~140㎝, 나이는 11~12세이며, 성별은 알 수 없었다.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의 독무덤은 대형(大形) 토기 2개를 이용한 것으로, 대략 기원전 5,500~5,000년에 해당하는 이른 시기의 무덤이다. 그리고 남해안 섬 지역의 신석기 시대 무덤이 대부분 신전장(伸展葬)[시신을 곧게 펴서 묻는 것]인데 비해, 가덕도 신석기 유적의 무덤은 굴장(屈葬)[시신을 굽히거나 구부려서 묻는 것]이 많아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매장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청동기 시대]

1. 유적의 개요

부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노포동 유적, 반여동 유적, 괴정1동 유적, 괴정2동 유적, 감천동 유적, 온천동 유적, 방곡리 유적 등이 있으며, 최근 부산 시민 공원 조성 사업 부지인 하야리아 부대 터,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해운대구 석대동에서도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었다.

주거지에서는 무문 토기(無文土器)와 여러 종류의 간석기[마제 석기(磨製石器)], 무덤에서는 붉은 간 토기[적색 마연 토기(赤色磨硏土器), 단도 마연 토기(丹塗磨硏土器), 홍도(紅陶)]와 간 돌칼[마제 석검(磨製石劍)] 등이 주로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유물이며, 아직 부산 지역에서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청동 유물인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은 발견되지 않았다. 부산 지역은 도시화로 인해 훼손되거나 소멸된 유적이 많은데, 최근 기장을 비롯한 부산의 외곽 지역에서 대규모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청동 유물의 발견과 더불어 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연구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2. 주거와 무덤

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확인된 주거는 대부분 움집이며, 평면 모양은 직사각형이 많고 최근에는 원형의 송국리형 주거지(松菊里型住居址)[평면 원형의 주거지 가운데에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는 주거지로서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명칭]도 일부 조사되었다. 주거는 주로 구릉에 입지하며, 내부에서는 벽면 아래의 배수 시설인 벽구(壁溝),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저장공(貯藏孔)], 기둥 구멍[주혈(柱穴)] 등이 확인된다.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는 신석기 시대와는 달리 주거지 안에 화덕 시설이 있어 집 안에서 음식물을 조리하면서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는 고인돌[지석묘(支石墓)],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독무덤이 있다. 이 가운데 가덕도감천동의 고인돌은 해안가에 인접하고 있어 부산의 지역적인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돌널무덤은 무덤의 벽면을 작은 할석(割石)을 이용하여 쌓은 것과 큰 판석(板石)으로 한 것이 있으며, 바닥에는 편평한 판석을 깐 것과 자갈돌을 깐 것으로 구분된다. 토기 2점의 아가리 부분을 잇댄 합구식(合口式) 독무덤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낙민동에서 4기가 발견되었다.

[의의]

청사포 유적이 발견되면서 부산 지역의 역사가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이어서 해운대 좌동 구석기 유적·중동 구석기 유적이 정식 발굴 조사 되어 부산의 구석기 문화가 동북아시아 후기 구석기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앞으로 발굴 조사가 늘어나면 부산 지역에서도 구석기 시대 중기 및 전기에 속하는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리고 중동 구석기 유적의 석기 제작 기법은 일본 구석기 시대 후기의 석기 제작 기법과 유사한 특징이 있어 두 지역의 비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경우 부산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해안가 패총 유적이 많은 편이어서, 신석기 시대의 부산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안가를 생활의 주요한 터전으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안가에 입지한 패총 유적 등으로 부산 지역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연구에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아 왔다. 근래에도 범방동 패총의 해안선과 가덕도 신석기 유적의 무덤 등을 통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범방동 신석기 유적에서 해안 모래층을 통해 확인된 신석기 시대의 해안선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례이며, 범방동 신석기 유적의 사슴 무늬 토기는 우리나라 선사 시대의 회화와도 관련한 진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생활에서 수렵·어로·채집뿐만 아니라 농경과 관련된 자료도 늘어나고 있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인 생업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부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은 구석기 시대나 신석기 시대에 비해 유적의 수는 많지만, 대부분 도심에 위치한 탓에 훼손 및 소멸된 사례가 많다. 남아 있는 유적에 대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학술 조사와 더불어 유적의 보존·보호 활동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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