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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토시마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967
한자 中村俊松
영어음역 Nakamura Toshimatsu
이칭/별칭 중촌준송(中村俊松)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실업가
성별
대표경력 부산상업회의소 부회두
활동 시기/일시 1905년 - 부산거류민단 의원
활동 시기/일시 1916년 - 부산상업회의소 부회두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17년 - 부산수산주식회사 감사역, 부산공동창고주식회사 취체역, 부산식량품주식회사 취체역사장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부산운수합자회사, 부산정미소합명회사, 조선수산수출주식회사, 조선해조주식회사 중역·대주주
출생지 일본 오이타 현 풍전[大分縣 豊前]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활동지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정의]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실업가.

[활동 사항]

나카무라 토시마츠[中村俊松]는 일본 오이타 현 풍전[大分縣 豊前]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독학을 했고, 나가사키[長崎]와 고베[神戶] 등지에서 장사를 배우며 성장하였다. 조선과의 인연은 개항 후 일본군을 따라 어용상인으로 활약하면서 맺었다. 즉, 1894년 청일 전쟁과 1900년 6월 의화단의 북청 사변(北淸事變) 때 군수품의 공급을 통해 재산을 축적했고, 1904년 러일 전쟁 때는 어용상인으로 직접 종군하여 일본 군대를 따라 움직이며 상매(商賣)를 통해 자본을 확대하였다.

나카무라 토시마츠는 당시 부산이 지니고 있던 식민 침탈의 지정학적 위치와 식민지 개발 전망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남빈정[현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에 무역 거점인 나카무라토시마츠상점[中村俊松商店]을 설립하였다. 이 상점은 해륙 물산 무역업은 물론 양조업까지 취급했으며 지점을 목포, 진남포, 경성에까지 두고 있었다. 한편 대구해륙물산회 사장도 맡는 등 나카무라 토시마츠는 착착 사업을 확장하여 많은 종업원을 고용했고, 부산의 대상점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나카무라 토시마츠는 그 밖에도 울산 농서면에 철광 개발을 위한 광산을 사들이는 등 광업에도 관여하였다. 그리고 부산의 다른 일본인 자본가들과 연합하여 각종 조합 및 회사 설립에도 적극적으로 관여, 1917년 부산수산주식회사 감사역, 부산공동창고주식회사 취체역, 부산식량품주식회사 취체역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부터는 부산운수합자회사, 부산정미소합명회사, 조선수산수출주식회사, 조선해조주식회사 중역·대주주로 활동하였다.

나카무라 토시마츠는 이러한 경제적 성장을 기반으로 부산의 일본인 사회에서 유력자로 부상하여, 부산거류민단 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전국적 동업 조합인 한해수산조합(韓海水産組合) 대의원 등도 지냈다. 또 1907년부터는 부산번영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일찍부터 일본인의 이익 단체인 부산상업회의소의 의원을 거쳐 1909년 평의원, 1911년 상의원에 당선되는 등 일본인 중심의 식민지 개발에 앞장섰다. 1916년 ‘조선상업회의소령’에 의해 새롭게 조선인 상공업자와 합동한 부산상업회의소의 부회두에 당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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