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91 |
---|---|
한자 | 安音全 |
영어음역 | An EumJe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정마을로 83[온천2동 산66-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지현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사회사업가.
[가계]
안음전(安音全)은 1905년 10월 23일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아버지 안태명과 어머니 박성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 학창시절 및 유치원 보모로서의 생활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안음전은 마산 의신여학교 1학년 학생이던 1919년 3월 21일 마산의 옛 시장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안음전은 교사 박순천(朴順天)과 선배인 최봉선(崔鳳善)의 지도를 받아 다른 학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2년 의신여학교를 졸업한 안음전은 일본 히로시마고등여학교[廣島高等女學校] 5학년에 편입하였다. 이듬해 졸업 후 그녀는 일본 동경보육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29년 동경보육전문학교를 졸업한 안음전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1930년부터 1938년까지 마산 월영유치원과 양한나(梁漢拿)가 설립한 통영 진명유치원에서 유치원 보모를 하였다. 1930년대 초반 안음전은 김지병(金知丙)과 결혼을 했는데, 김지병은 후에 부산에서 창간된 『자유 민보』 편집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2. 부산에 새들원 설립
1938년 진명유치원 보모를 사직한 후 남편과 함께 만주로 갔던 안음전은 해방을 앞두고 귀국해 남편과 부산에 정착하였다. 그녀는 해방이 된 바로 직후부터 부산 성지부인회에 가입하여 부산항에서 귀환 동포들을 환영하고 구호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부인회 활동 중 부산항 주변을 배회하던 고아들을 하나둘 집으로 데려와 보살폈던 안음전은 아이들의 수가 많아지자 고아원을 짓기로 결심하였다.
안음전은 사재를 털어 적산(敵産) 건물을 구입하고, 1945년 11월 1일 중구 대청동 4가 797번지 국제 시장 옆에 부산 최초의 아동 양육 시설인 ‘새들원’을 세웠다. ‘새들’이란 이름은 ‘새로운 땅[New Earth]’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새들원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로 더욱 늘어갔고, 안음전 개인의 능력으로는 경영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951년부터 기독교아동복리회[Christian Children's Fund][현 한국어린이재단]에 가입하여 원조를 받았다. 정부 보조금이 없던 상황에서 기독교아동복리회의 아동 1인당 10불씩 주는 후원금은 시설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녀는 부산에 주둔했던 미군 및 미국의 종교 단체와 새들원 아이들의 자매결연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 새들원의 많은 아이가 정기적으로 학비를 후원받아 학업을 포기하기 않도록 도왔다. 1952년에는 하와이노인회 초청으로 하와이를 방문하였으며, 도착 직후 얻은 풍토병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한인들을 찾아다니며 새들원 아이들을 위한 모금 강연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고아들의 수도 계속 늘어 대청동 원사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952년 기독교아동복리회의 도움으로 원사를 지금의 위치인 동래구 온천2동 금정산 아래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신축 공사 중에 기존의 대청동 원사가 화재로 소실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안음전은 기독교아동복리회의 원조가 감축·중단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젖소 사육과 텃밭 경영 등 자체 수익 사업을 시작했고, 1978년에는 대청동 부지를 수익 사업용으로 대체 허가를 받아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었다. 이 아파트의 임대 수입은 새들원의 운영 자금으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 새들원은 전국의 아동 보육 시설 중 가장 자립률이 높은 시설 중 하나가 되었다. 한편, 안음전은 시설 아동들의 직업 교육과 사회 적응 훈련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1958년에 육아 시설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 평가받는 ‘소숙사 제도[cottage system]’을 새들원에 도입하였다. 이는 1963년 이 모델을 실시했던 한국 SOS어린이마을보다 무려 5년이나 앞서 시행한 선구적인 시도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3. 기타 사회 활동
안음전은 사회사업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1948년부터 1951년까지 부산 YWCA 회장, 1948년에는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부지사장, 1970년부터 1971년까지 기독교아동복리회 한국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였다. 1985년 1월 3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35-6번지 실로암 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8년 6월 16일 국민 훈장 동백장[제1511호]을 수상하였다. 1985년 10월 6일 새들원 안뜰에 추모 석상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