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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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山大宗師影幀 |
영어의미역 | Portrait of Great Master Dongsan |
이칭/별칭 | 「범어사 동산 대종사 영정」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은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동산 혜일(慧日)의 영정 2본.
[개설]
「동산 대종사 영정(東山大宗師影幀)」은 1954~1962년 전개된 불교 정화 운동을 최일선에서 추동, 견인하였던 동산 혜일[1890~1965]의 초상화이다. 동산 대종사의 영정은 1955년 처음 조성되어 최근인 2006년까지 제작되었다. 그 분포도는 부산 범어사, 부산 범어사 산내 암자 청연암, 부산 안적사, 부산 해월정사, 부산 국청사[1955년작 사진], 경남 해인사 용탑선원 등에 이른다.
[형태 및 구성]
「동산 대종사 영정」①은 세로 154.4㎝, 가로 94.4㎝의 비단 바탕 위에 채색한 전통적인 고식(古式) 양식을 따르고 있다. 동산의 장년 시절을 묘사한 작품으로, 좌측을 향한 좌안 7분면의 전신 좌상으로 가부좌한 모습이다. 손에는 불자를 들고 있으며, 수닝(手印)의 형태 도한 갖추고 있다. 좌대는 머리보다 높게 표현하였으며, 좌대의 양쪽은 넝쿨 무늬로 장식하였다. 장삼(長衫)과 가사(袈裟)는 상반되는 색상으로 화려하게 표현하였으며, 붉은 가사의 가장자리 부분에는 하얀 바탕에 붉은 꽃 문양을 그려 넣었다. 바닥에는 족좌대(足座臺)를 갖추고 있으나 신발은 표현하지 않았다.
「동산 대종사 영정」②는 세로 124.2㎝, 가로 86.9㎝의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려졌으며, 좌안 정면의 의자에 앉은 전신 교의 좌상이다. 오른손에는 주장자를 쥐고 있고, 왼손과 왼팔 위엔 금란가사(金欗袈裟)를 걸치고 있다. 화면 향좌측 상단에는 묵서로 화제(畵題) ‘동산 대종사 진영(東山大宗師眞影)’이 기재되어 있고 향우측 상단에는 묵서의 찬문(讚文)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원래미증전 기유제이신 삼만육천조 반복지저한(元來未曾轉豈有弟二身三萬六千朝反覆只這漢)’. 묵서의 화제는 찬은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峰)[1908~1991]의 서체이다.
[특징]
「동산 대종사 영정」①은 현재 범어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동산 대종사 영정」①의 소장 경위 및 소장 연도, 조성 연도, 조성 기간, 화가, 의뢰인, 훼손된 경위 등 모든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승 진영의 고식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점과 화제란이 공란으로 비워진 점 등을 미뤄 「동산 대종사 영정」②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추정 조성 연대는 생존 직계 상좌의 증언을 통해 대략 1973~75년경으로 추정된다.
「동산 대종사 영정」②는 부산 기장 안적사에 소장된 동산 대종사 영정과 동일한 영정이다. 안적사본은 1981년 동호(東湖) 정형모(鄭炯謨)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범어사 소장본은 1982년 동일 화가에 의해 제작되었다. 「동산 대종사 영정」②의 의뢰인은 동산의 직계인 덕명(德明)과 흥교(興敎)이다. 「동산 대종사 영정」②를 조성하게 된 경위는 「동산 대종사 영정」①이 근현대 인물인 동산의 전신 사조(傳神寫照)[동양화에서 초상화, 인물화를 그려 그 인물의 정신세계를 전하는 그림]를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고식 양식으로 조성된 「동산 대종사 영정」①을 「동산 대종사 영정」②의 모습인 근현대의 대종사 진영으로 조성하였는데, 이것은 「동산 대종사 영정」①의 훼손 때문이 아닌 현대적 조명을 위한 것이다. 현재 안적사본과 범어사본은 화제의 차이를 보이며, 특히 안적사본은 '신유(辛酉)[1981년] 초겨울 동호 정형모'를 기록하고 있어 영정을 그린 화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생존 작가 동호 정형모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전속 초상 화가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의의와 평가]
「동산 대종사 영정」은 불교 정화 운동의 성과와 동산의 정신을 받들기 위해 조성되었다. 진영의 양식은 고식 양식[「동산 대종사 영정」①]과 고식 양식을 탈피한 현대적 초상화 제작 양식[「동산 대종사 영정」②]으로 근현대 인물의 영정이 조성되었다. 초상화의 양식적 변화에 이은 진영의 발전을 통해 역사 속 인물로서의 동산을 추앙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그의 뜻을 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