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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34
한자 朴昌斗
영어음역 Bak Changdu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종교인
성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대구감옥소에서 복역
추모 시기/일시 1970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금정중학교]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동래여자고등학교]
출생지 함경남도 고화
학교|수학지 범어사 지방학림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관련 유적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1970] -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385 금정중학교 교정지도보기
관련 유적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1995]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

[정의]

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창두(朴昌斗)는 함경남도 고화에서 태어나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지방학림명정학교를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초 이들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이 이러한 사실을 누설하였기 때문에, 3월 18일 새벽 동래구 복천동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주모자 상당수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검거를 피한 40여 명의범어사 지방학림명정학교 학생들은 3월 18일 밤 동래읍 서문 근방에서부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9일에도 이들은 동래 시장 일대에서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박창두도 이때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선고 받고 대구감옥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함경남도 안변군 석왕사면 사기리 설봉산에 있는 석왕사에서 승려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0년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금정구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 이름이 새겨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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