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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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煥 |
영어음역 | Bak Yeonghwan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승려이자 독립운동자.
[활동 사항]
박영환(朴永煥)은 경상북도 영천군 북안면 유상동[현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유상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大敎科)에 적을 두고 있던 승려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초 이들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이 이러한 사실을 누설하였기 때문에, 3월 18일 새벽 동래구 복천동의 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주모자 상당수가 체포되었다.
하지만 검거를 피한 40여 명의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은 3월 18일 밤 동래읍 서문 근방에서부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9일에도 이들은 동래 시장 일대에서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박영환도 이때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으며, 대구감옥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0년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금정구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 이름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