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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29
한자 金永植
영어음역 Gim Yeongsik
이칭/별칭 김소석(金素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나철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명정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범어사 3·1 운동 참여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연표보기 - 범어사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학교|수학지 명정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영식(金永植)은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1919년 부산 범어사(梵魚寺)명정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출생 연도가 1900년대쯤이라고 짐작된다.

김영식은 1919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독려로 발발한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17일 명정학교범어사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에 모인 40여 명의 학생들은 김영규(金永奎)의 축사가 끝나자 독립 만세를 외친 후 복천동에 있는 범어사 동래포교당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미리 밀고를 받은 일본 경찰에 의해 일부가 체포되고 나머지는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범어사 학생들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 모여 동래 전역에서 만세시위를 단행키로 결의하였다.

이윽고 3월 18일 김영식을 비롯한 학생들은 동래읍성 서문 근방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까지 행진하였고, 3월 19일에는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동래 군중들에게 배포한 다음 남문에서 동래경찰서까지 행진하였다. 김영식은 일본 경찰이 주동 인물들을 검거할 때 함께 체포되었다. 34명의 학생들이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김영식은 집행 유예로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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