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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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伊川里- |
영어의미역 | Osa in Icheon-ri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9길 10-1[이천리 81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영환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경주 최씨 문중의 재실.
[위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의 이천교를 지나 일광로로 가다가 이천9길로 들어가면 동명 연립 주택이 나오는데, 이천리 오사는 동명 연립 주택 옆에 위치한다.
[변천]
이천리 오사는 경주 최씨 문중의 재실로서, 대문채의 종도리에 ‘단기 사이륙일년 상량 무진 칠월 초일일(檀紀四二六一年上樑戊辰七月初一日)’이라고 묵서되어 있고, 안채의 종도리에도 ‘귀 단군기원 사이륙일년 무진 칠월 초일일 정해 사시 수주 금월 육일 임진 자시 상량 룡(龜 檀君紀元四二六一年戊辰七月初一日丁亥巳時竪柱今月六日壬辰子旹上樑 龍)’이라고 묵서되어 있다. 단기(檀紀)로 쓴 연대에서 보아 1928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안채의 경우, 마루 후면의 나무판 벽에 있는 두 짝의 미닫이는 원래는 나무판으로 된 문이었으나 후에 유리문으로 바꾸었다. 또한 각 방의 앞쪽 문은 원래 두 짝의 여닫이문과 두 짝의 미닫이가 2중으로 설치된 창호를 바른 문이었으나, 후에 유리문으로 바꾸었다. 전면의 마루 양쪽에는 최근에 시멘트로 벽체를 만들고 유리를 끼운 고창(高窓)을 설치하였으며, 마루 바깥쪽에도 알루미늄 섀시에 유리를 끼운 미닫이문을 설치하였다.
[형태]
건물의 배치는 ‘一’ 자형의 안채와 대문채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평행하게 서향으로 놓여 있는 형태이다. 안채의 북쪽에는 우물이 있고 남쪽에 장독대가 있다. 모든 건물의 주두나 소로 등의 부재(部材)는 조선 시대의 수법을 따르고 있으나, 대청 후면의 창호나 온돌방 전면의 창호 등은 일제 강점기에 유행하던 수법이 사용되었다.
건물의 정면 총길이는 11m, 측면 총길이는 5.1m이다. 가로 24㎝, 세로 22㎝인 사각기둥을 사용하였고, 방 2칸은 뒤쪽으로 폭 50㎝의 툇간(退間)을 만들어 지붕 바닥을 가리는 반자(盤子)를 내달았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상부는 홑처마에 전통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다. 중앙 2칸은 마루, 좌우 2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 1칸은 모두 마루를 깔았다. 기단은 시멘트로 만들고 바깥쪽 상부에만 화강암 장대석을 두른 형태이다. 기둥 아랫부분은 시멘트로 막았다.
마루 전면의 아래위에는 격자문 띠살, 가운데에는 ‘아(亞)’ 자의 띠살을 넣은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달았으며, 상부에는 사격자문과 팔각의 띠살 고창을 설치하였다. 후면의 나무판 벽에 두 짝의 미닫이가 달려 있다. 마루와 양쪽 방 사이에는 사분합문을 달았다. 방의 내부에는 뒤쪽으로 두 짝 미닫이문이 달린 반침이 만들어져 있다.
[현황]
현재 이천리 오사는 본채와 문간채가 남아 있으며, 본채 우측에 가건물이 세워져 있다. 본채는 무익공집이며, 측면 벽체와 대청, 마루, 창호 등에서 변개(變改)가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져 있다. 특히 기단과 초석, 벽체 등은 최근에 시멘트 모르타르로 덮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이천리 오사는 분명한 건립 연대에도 불구하고 건축사적인 가치는 좀처럼 찾기 힘든 건축 유구이다. 일제 강점기 경주 최씨 문중의 독립운동 관련 기사를 확인한 결과 그 사실은 충분히 인정되나, 그렇다고 이천리 오사가 당시의 독립 운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