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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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彦燮興學文化去思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Honoring Jeong Yeonseop’s Beneficient Government of Promoting Learning and Culture |
이칭/별칭 | 부사 정공언섭 흥학문화거사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명륜동 235] 동래 향교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우정임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조선 후기 동래 부사 정언섭(鄭彦燮)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정언섭[1686~1748]은 1730년(영조 6) 8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1733년(영조 9) 10월까지 만 2년 6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 정언섭은 동래를 유교의 고장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동래 읍성을 수축하고,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한 동래부민의 유해를 거두어 임진 동래 의총(壬辰東萊義塚)을 만들기도 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건립 경위]
정언섭 흥학문화거사비(鄭彦燮興學文化去思碑)는 1735년(영조 11)에 지역의 학교와 문화를 흥기한 정언섭의 공을 기념하고 잊지 않기 위해 동래부민이 세웠다.
[위치]
정언섭 흥학문화거사비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235번지 동래 향교 앞뜰에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이수(螭首)가 없이 위가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형태이다. 정언섭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과 비석 건립에 힘쓴 이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신(碑身)의 하단은 갈라져 금이 나 있으며, 표면도 거칠고 깨진 곳도 다수 있는 등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비의 크기는 높이 108㎝, 너비 36㎝, 두께 23㎝이다.
[금석문]
비석에는 ‘부사 정공언섭 흥학문화거사비(府使鄭公彦燮興學文化去思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변방 고을에 촉군의 학풍을 일으켜 풍속이 조양처럼 변하였네. 남녘 하늘 이 지역에 유자의 교화 드높아라. 어찌 다만 여기에서 그치리, 백치의 읍성 높게 쌓았네. 문무의 다스림은 만대로 칭송을 받으리라 숭정 기원 후 을묘[1735] 오월 일 시술재 세움. 도감 박민구, 좌수 김하삼[學闡蜀郡 風變潮陽 天南一域 儒化洋洋 豈惟止斯 崇墉百雉 文武之治 萬代受賜 崇禎紀元後乙卯 五月日 時述齋 立 都監 朴敏求 座首 金夏三]”이라고 적혀 있다.
[현황]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위치한 동래 향교 앞뜰에 세워진 여러 개의 비석 가운데 하나이며, 동래 향교와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정언섭 흥학문화거사비를 통해 1730년 동래 부사에 부임하여 동래 읍성을 다시 쌓고,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임진 동래 의총을 만든 정언섭의 업적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