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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056
한자 李安訥淸德善政碑
영어의미역 Stone Monument for Honoring the Virtue of Yi Annul
이칭/별칭 부사 이공안눌 청덕선정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7-67[온천동 산17-7] 금강공원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우정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선정비
양식 석비
관련인물 이안눌(李安訥)[1571~1637]
재질 화강암
크기 105㎝[높이]|39㎝[너비]
관리자 부산광역시 동래구청
건립 시기/일시 1609년연표보기 -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782년연표보기 - 재건
보수|복원 시기/일시 1891년 6월연표보기 - 중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71년연표보기 - 이안눌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이안눌 사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08년연표보기 - 이안눌 동래 부사 부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09년연표보기 - 이안눌 동래 부사 퇴임
현 소재지 금강 공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7-7지도보기
원소재지 안락동사무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동래 부사 이안눌(李安訥)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임진왜란 직후 동래 부사에 부임한 이안눌[1571~1637]은 임진왜란 당시 좌수영성이 점령당하자 7년간에 걸쳐 유격전을 하다가 죽은 평민 25명의 충절을 기리는 일을 추진하였다. 이안눌은 지방민의 청원에 따라 민간에 전하던 25명의 행적을 정리하여 『정방록(旌榜錄)』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순절사 후손들에게 부역 면제라는 지방 수령 차원의 포상을 내렸다. 이러한 이안눌의 공을 기려 1609년(광해군 즉위년) 이안눌 청덕선정비(李安訥淸德善政碑)를 세웠다.

[위치]

원래 안락동사무소 앞에 있던 비를 후손들이 개건하여 동래구 온천동 산17-7번지 금강 공원으로 옮겼다. 금강 공원 내에 여러 기의 공덕비를 모아 두었는데, 그중 하나이다.

[형태]

기단만 있고, 지붕이 없는 형태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05㎝, 너비 39㎝이다.

[금석문]

비석에는 ‘부사 이공안눌 청덕선정비(府使李公安訥淸德善政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비석을 만력 기유[1609]에 세웠으나 중간에 잃어버렸다. 174년 뒤인 임인년[1782]에 다행히 잘린 비를 찾아서 이어 다시 세웠다. 광서 17년 신묘년[1891] 6월 일 고쳐 세움. 8대손 원신·형신, 9대손 민구·민수·민홍·민준·민화·민국, 10대손 영기·영후[竪在萬曆己酉 失在中年 己酉後百七十四年壬寅 幸得斷碑 續而改竪 光緖十七年辛卯 六月日 改竪 八代孫 元信 享信 九代孫 敏龜 敏秀 敏洪 敏俊 敏化 敏國 十代孫 永基 永垕]”라고 적혀 있다.

[현황]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안눌 청덕선정비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동래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고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백성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하였던 이안눌의 업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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