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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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龍福忠魂塔 |
영어의미역 | Memorial Tower for An Yongbok |
이칭/별칭 | 안용복 장군 충혼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29-1]|망미번영로70번길 106-7[수영동 33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인택 |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현대 울릉도와 독도를 수호하려 노력한 부산 출신 안용복(安龍福)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
[건립 경위]
1952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평화선 선언을 통해서 해양 주권을 선언하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전 국민이 분노하였다. 이러한 반일 분위기 속에서 부산의 문화계 인사들은 안용복 담론을 공론화하기 위하여 1957년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1960년 이은상(李殷相)을 통해 충혼탑 건립문을 작성하여 1967년 10월 30일 수영 사적 공원에서 충혼탑 제막식을 하였다. 2001년 3월 20일 수영 사적 공원에 안용복 사당인 수강사(守疆祠)를 준공함에 따라 충혼탑을 사당 경내로 옮겼다.
[위치]
안용복 충혼탑(安龍福忠魂塔)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299-1번지 수영 사적 공원 내에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석재이며, 직사각형의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안용복 장군 충혼탑’이라 새겼고, 뒷면에는 이은상이 1960년 쓴 「수포장 울릉군 안공용복 충혼탑 건립문」을 새겼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슬프다. 역사를 상고해 보면 숨겨진 속에 큰 인물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니 저 동래 사람 안용복 님이 바로 그 한 분이시라. 그는 본시 수령 군졸로 이조 숙종 계유[1693] 여름 울릉도에 표착하여 국경을 넘어온 왜들과 싸운 끝에 강제로 끌려가 오랑도(五浪島)로 호키주[伯耆州]로 다니면서 끝까지 항쟁하여 일본이 울릉도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에도 강호 막부의 서약서를 받아 쥐었으나, 대마도에 이르러 도로 빼앗기고 50일 동안 구류까지 당한 뒤에 동래 왜관으로 와서 또 40일을 갇혔다가 동래 부사에게 인도되었던바, 부사 또한 월경하였다 하여 도리어 형벌을 가하는 것이었다. …… 여기 그의 행적을 대강 적고 다시 헤아리매 저 섬이 오늘 우리 판도 속에 들어 있음은 오직 그의 은공이다. 남쪽 선비들이 찬양회를 결성하고 겨레의 이름으로 울릉군을 봉한다 함은 진실로 느꺼운 일이다. 그를 위하여 한 덩이 돌을 세움에 미쳐 내 이제 노래를 부치노니 ‘동해 구름 밖에 한 조각 외로운 섬, 아무도 내 땅이라 돌아보지 않을 적에, 적굴 속 넘나들며 저님 혼자 애썼던가, 상이야 못 드릴망정 형벌 귀양 어인 말인고? 이름이 숨겨지다 공로조차 묻히리까? 이제 와 울릉군 봉하오니 웃고 받으옵소서’ 서기 1960년 개천절 이은상 지음.”
[현황]
안용복 충혼탑은 안용복 사당인 수강사 앞에 있다. 현재 부산광역시가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52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분개한 시민 의식이 바탕이 되어 1967년 안용복 장군 충혼탑 건립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안용복 충혼탑은 독도 영유권 수호에 대한 1960년대 시민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