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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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琦墓碑 |
영어의미역 | Tomb Stone for Kim Gi |
이칭/별칭 | 증 어모장군 훈련원 첨정 광주 김공지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199-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차철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동래 출신 김기(金琦)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김기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 출신의 의병 활동으로 세상을 뜬 뒤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 첨정(訓練院僉正)[조선 시대 군사의 시재(試才)와 무예 훈련 및 병서 습독 등을 관장하던 훈련원 소속의 종4품직]에 추증되었다. 동래 지방의 의병 활동을 기록한 『충렬사지(忠烈祠志)』 부록2 별전공신록에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포상을 받은 24명의 공신 가운데 한 명이다.
[건립 경위]
김기의 11세손인 김영근(金永根)·김방우(金邦雨)·김영수(金英壽)·김석문(金碩文)·김만석(金萬石) 등이 김기의 행적과 후손들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김기 묘비(金琦墓碑)를 건립하였다.
[위치]
김기 묘비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199-5번지에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크기는 높이 133㎝, 너비 34㎝, 두께 11㎝이다. 팔작지붕 모양의 이수(螭首) 형식을 갖추었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증 어모장군 훈련원 첨정 광주 김공지묘’이고,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의 뛰어난 절개와 위대한 공로는 역사책과 사람들이 칭송하고 있는데, 어째서 비석을 세우는가? 비석이란 묘소를 표시하기 위해 세우는 것이니, 비석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공의 10세손인 김기진과 김기복이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부탁하기를 ‘우리 선조의 무덤에 오래도록 지문(誌文)을 짓지 못한 것은 때를 기다렸기 때문이고, 또한 소중한 글을 부탁함에 감히 경솔히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가엾게 여기시고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나는 사양하였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공은 이름이 기(琦), 자가 화경(和卿), 본관이 광주(廣州)로 고려의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이촌(銕村) 김훤이 13대조이다. 고조 할아버지는 선무랑 중진대부(宣武郞中眞大夫) 김명현이고, 증조 할아버지는 김경보이며, 할아버지는 김수백이고, 아버지는 김연평이며, 어머니는 영산(靈山) 신진안(辛進安)의 딸이다. 공은 나면서부터 하늘에서 충의를 타고났으며, 영특하고 비범함이 남보다 뛰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지만 공은 판관으로 끝까지 관직을 버리지 않고 의병을 일으킨 공신 24명과 더불어 힘을 합쳐 적을 토벌하였으니, 공 또한 공신 가운데 한 사람이다. 조정에서 공을 표창하여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의 벼슬을 내리고 어모장군 훈련원 첨정을 더하여 주니 성스런 조정의 높은 보답이 지극하였다. 공이 세상을 떠나자 만덕(萬德)의 구암(龜巖) 자좌(子坐) 언덕에 안치하고 부인 연안(延安) 이여명(李麗明)의 딸과 합장하였다.
세 아들이 있었으니 장남은 김난길, 차남은 김□경으로 동래의 향안(鄕案)에 들었다. 손자는 김윤덕·김홍덕이고, 증손자는 김익겸·김세겸이며, 현손자는 김진려·김시려·김천주이다. 5세손은 김기태·김성태이고, 6세손은 김여현·김여화·김여종이고, 7세손은 김한택·김지택·김우택·김정택이며, 8세손은 김도□·김광주·김양주·김두홍·김두권이고, 9세손은 김규상·김칠상·김인상·김괘원·김괘일·김동해이고, 10세손은 김기수·김□태·김성관·김기학·김기원이다. 여러 후손들은 번다하여 모두 기재하지 못하고 다만 계보만 기록해 둔다. 훗날 군자들이 살펴볼 수 있도록 명(銘)을 짓는다.
뛰어난 광주 김씨 대대로 덕이 빛났었다/ 공은 이런 가풍을 받으셔서 충의가 당당하셨다/ 책에 기록되고 현판에 걸린 공로는 해와 별처럼 찬란하리라/ □ 같은 무덤이니 구암의 언덕이라네/ 법도에 맞게 새로 단장하였으니 무덤 길에 빛을 더하리라/ 후세에 이렇게 환하게 밝히나니 이 비명을 보아라. 성균관 박사 남평 문성준 근찬, 승훈랑 참봉 죽산 박전필 근서, 무진 2월 일 동역 11세손 김영근·김방우·김영수·김석문·김만석[贈禦侮將軍訓鍊院僉正廣州金公之墓 公之卓節偉功 史書而人誦之 奚以碣爲 然碣者所以表其墓 碣亦不可不爲也 公之十世孫琪振 都事琪福 袖家狀屬余曰 吾先祖之藏 久未克誌 盖猶有待也 且不朽之託 不敢輕以屬人 願子哀而志之 余辭不獲 按公諱琦 字和卿 貫廣州 高麗有諱晅 官門下贊成事 號銕村 是爲公十三世祖也 高祖諱命鉉 宣武郞中眞大夫 曾祖諱敬寶 祖諱受伯 考諱連平 妣靈山辛氏進安女 公生得忠義根天 英邁絶人 當壬亂 人皆離散 公以判官 終不背官 與倡義功臣二十四人 竝力討賊 公亦同功之一也 自朝家旌褒 贈繕工監副正 加贈禦侮將軍訓鍊院僉正 聖朝崇報至矣 及歿 萬德九岩子坐原 配延安李氏麗明女 合塋 有三男 長蘭吉 次□慶 入東萊鄕案 孫潤德洪德 曾孫益兼世兼 玄孫振麗始麗天柱 五□孫起兌成兌 六世汝賢汝華汝宗 七世漢澤之澤翊澤鼎澤 八世道□光周良周斗泓斗權 九世奎祥七祥仁祥快元快逸東海 十世淇守□泰聖觀琪學琪元 諸孫蕃不載 姑錄其譜系 後之君子有以考爲銘 顯允廣金 世德孔彰 公乃挺持 忠義堂堂 錄券揭板 日星輝煌□劍同阡 九岩之岡 儀衛新賁 邃道增光 昭玆來許 視此銘章 成均舘博士 南平 文聲駿 謹撰 承訓郞參奉 竹山 朴銓弼 謹書 戊辰二月日 董役 十一世孫永根 邦雨 英壽 碩文 萬石].”
[현황]
현재 김기 묘비는 주택가와 인접한 야산에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김기 묘비는 향토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