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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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周星旌閭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Honoring the Virtue of Gu Juseoong |
이칭/별칭 | 효자구주성지려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사상로 320-1[덕포동 417-1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부산 출신의 효자 구주성(具周星)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1740년(영조 16)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효자·효녀조에 따르면, 구주성은 아버지가 장티푸스로 생명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아버지에게 피를 마시게 하여 목숨을 살렸는데, 1610년(광해군 2) 이 사실이 관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1715(숙종 41)에 효자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구주성 정려비(具周星旌閭碑)는 1842년(헌종 8) 2월에 구주성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다시 세운 것이다.
[위치]
구주성 정려비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 417-15번지 상강선대(上降仙臺) 어귀에서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 끝에 도로와 인접하여 3기의 비석군과 함께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돌이며, 크기는 높이 78㎝, 너비 29㎝, 두께 9㎝이다. 앞면의 비문은 음각하였으며, 안에 붉은 칠이 되어 있다.
[금석문]
비 앞면에는 ‘효자 구주성지려(孝子具周星之閭)’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숭정 기원후4 임인 2월 개수(崇禎紀元後四壬寅二月改竪)[숭정 기원 후 네 번째 임인년 2월에 다시 세우다]”라고 하였다.
[현황]
비가 있는 상강선대의 빈터에 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구주성 정려비는 효행을 기리기 위한 목적이지만, 정려비의 주인공인 구주성은 본관이 창원(昌原)이면서 동래(東萊) 문중에 속해 있어 인물에 대한 내용이 동래와 창원 두 지역에서 모두 나온다. 이를 통해 지역과의 연계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동시에 정려비의 소실로 동래 문중에서 자신들의 거주지 부근에 새로이 효자비를 세울 정도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점에서 창원 구씨(昌原具氏)의 동래 지역에 정착한 후 세력 규모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