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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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福泉寺現王圖-服藏遺物一括 |
영어의미역 | Painting of Hyeonwang-do and Relics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산정길 41[신선동 3가 산6-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미경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3가 복천사(福泉寺)에 전래하는 일제 강점기 불화인 현왕도와 복장 유물.
[개설]
현왕도(現王圖)는 사람이 죽은 후 3일 되는 날에 행하는 조선 시대 불교 천도재 가운데 하나인 현왕재에 근거하여 제작된 명계 불화(冥界佛畵)이다. 현왕도의 주존인 현왕(現王)은 염라 신앙에서 파생한 불화이다. 기본 구성은 심판을 주재하는 현왕을 중심으로 제왕형(帝王形)의 현왕이 중앙에 앉아 있고, 그 좌우로 전륜성왕(轉輪聖王)과 대륜성왕(大輪聖王), 판관(判官), 녹사(錄事), 사자(使者)를 배치한다.
현재 복천사에는 불교 회화 7점이 있는데, 「복천사 현황도(福泉寺現王圖)」는 그중 하나이다. 부산·경상 지역에서 활동한 양완호(梁玩虎)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불화 뒷면의 배접지 안쪽에 납입된 복장 유물이 발견되어 수습하였다. 2007년 9월 7일 ‘복천사현왕도및복장유물일괄’이란 명칭으로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세로 110㎝, 가로 112.3㎝의 액자형 불화로 면 바탕에 채색하였다. 액자 후면의 중앙에 방형 틀이 있고, 내부에 복장물이 들어 있어 수습하였다. 화면에는 3곡 병풍을 배경으로 현왕이 정면을 향해 정좌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 좌우 앞쪽 전면에 판관과 녹사·사자·동자 등 모두 12위의 존상이 대칭을 이루며 시립하였다. 현왕은 용머리 장식이 있는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나뭇결 느낌을 그대로 살린 책상이 놓여 있다. 책상 위에는 벼루와 붓, 두루마리 문서가 올려 있으며, 아래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설채(設彩)는 주색과 함께 청색·황색·녹색·백색을 적절히 사용하였다.
불화 후면의 배접지 안쪽에서 발견된 복장 품목은 후령통(喉鈴桶)[복장물의 중요 납입 물품 중의 하나로, 인간 신체의 오장육부를 상징하며, 이를 불복장에 넣어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봄]과 이를 싸는 황색 비단 보자기를 비롯하여 「팔엽대홍연지도(八葉大紅蓮之圖)」, 진언지(眞言紙) 3매, 「준제구자천원지도(准提九字天圓之圖)」, 「열금강지방지도(列金剛地方之圖)」, 「오륜종자도(五輪種子圖)」, 그리고 오색실(五色絲)과 오보병(五寶甁)의 내용물, 오산개(五傘蓋)와 양면 원경(兩面圓鏡) 등 5개의 거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이로 만든 후령통 내부에는 다섯 방위에 따라 봉안할 물품을 담은 5개의 보배병이 배치되었으며, 재질은 종이로 제작되었다. 후령통과 보배병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금은·동·종이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쓴다. 그러나 오행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동쪽은 청색, 남쪽은 적색, 서쪽은 백색, 북쪽은 녹색, 중앙은 황색의 보병을 구분해 사용한다.
[특징]
현왕도는 조선 후기 18세기부터 다수 조성되었는데, 의식의 분화와 더불어 조선 후기에 새로이 등장한 불화이다. 조선 시대 사찰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의 천도재가 성행하면서 의식도 다양하게 분화된 것이다. 현왕의 배경으로 두른 3곡 병풍은 바탕에 황색을 베풀고 담먹(淡墨)으로 독수리와 소나무를 그려 넣은 후 백색으로 음영을 표현하였는데, 이와 같은 표현은 같은 시기의 화조도(花鳥圖)에서도 보인다.
「복천사 현황도」 화면 하단 중앙에 마련된 적색 바탕의 화기란은 비어 있어 조성 시기와 화승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도상적으로 19세기 중엽부터 새로이 유행한 현왕도 형식에 속한다. 화면 구성과 존상 표현 등으로 보아 20세기 전반에 제작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복천사 현황도」는 조성 시기가 다소 늦은 근세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할 뿐 아니라, 특히 복장물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불화 연구에 자료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