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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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浦 |
영어음역 | Bak Yeongp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순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문학을 이끈 1세대 문학인.
[활동 사항]
박영포(朴永浦)[1913~1939]는 1913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1927년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재학하였고, 이듬해 부산진육영학원 강사가 되었다. 박영포는 근대 부산의 지역 문학을 이끈 1세대 문학인이다. 김정한(金廷漢), 정비석(鄭飛石), 김동리(金東里) 등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1936년 무렵 박영포는 단편 소설 「잔한기(殘恨記)」로 응모하였으나 입선하지 못했다. “문장 수련에 힘쓸 필요가 있었다”는 선후감(選後感)과 함께 장차 조선 문단을 이끌 신인으로서 선자(選者)의 기대를 높였던 만큼 시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문재(文才)를 뽐냈던 것으로 보인다.
1937년 7월 시 동인지 『생리(生理)』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생리』는 부산 최초의 시 동인지로, 부산 화신 연쇄점에 근무하던 유치환(柳致環)이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았고, 통영 출신의 유치상(柳致祥), 최두춘(崔杜春), 장응두(張應斗), 최상규(崔上圭), 부산의 염주용(廉周用) 등이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언론인 박문수에 따르면 박영포는 이 시기에 일본의 『문예 춘추』에 시 「푸른 조끼」가 당선되었고, 『부산 일보』와 『실업 시보』에도 시를 발표하였다고 한다.
『생리』 동인으로 활동하던 전후 시기, 부산 출신의 김말봉(金末峯), 김정한, 김소운(金素雲) 등이 지역 바깥에서 문학적 외연을 넓혀 갈 때 박영포는 안쪽에서 부산의 지역 문학을 개척해 나갔다. 박영포의 문학은 초창기 부산 지역 문학의 자산이자 결핵 문학의 한 갈래를 이룬다는 점에서 사뭇 뜻 깊다. 하지만 박영포의 문학 활동은 『생리』 1집에 한정되었다. 지병인 “폐(肺) 한복판에 동혈(洞穴)을 뚫었”[「요양소(療養所)」]던 결핵을 이기지 못하고 27세의 푸른 나이에 꺾이고 말았기 때문이다
[학문과 저술]
현재 남아 있는 박영포의 작품은 『생리』 1집에 실린 「자(雌)」, 「하반(河畔)의 곡예단」, 「교문을 나서는 학도들에게」, 「요양소」, 「도가(悼歌)」 등 5편으로, 『부산 문학』5[1973. 8]에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