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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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谷洞東院堂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Geumgok-dong Dongwonmaeul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1091 |
집필자 | 황경숙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동원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금곡동 동원 마을에 당산 신앙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 없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당산제를 모셔 온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한편, 진압 장군제(鎭壓將軍祭)의 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관련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마을에 호열자(虎列刺)[콜레라]가 창궐할 때, 마을의 한 노인이 꿈을 꾸니 마을 앞에 한 건장하고 늠름한 장군이 서서 백만 군사가 쳐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한다. 그 뒤 장군이 서서 백만 군사를 막던 곳을 하당으로 정하여 진압 장군제를 올리게 되었다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당은 없으며, 하당신으로 당산 나무와 상당신으로 당산 바위를 모시고 있다. 당산 나무의 수종은 은행나무 두 그루로 낙동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 펜스가 둥글게 쳐져 있다. 당산 바위는 감낡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큰 바위 4개로 구성되어 있다. 큰 바위의 크기는 높이 20㎝, 지름 270㎝이다.
당산신에 대해 전해 오는 영험담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1900년대 한 제관이 제의를 모시는 날 오전에 마을에 아이가 죽어 그 시신을 제관집 앞으로 운구하였는데, 그 일로 인해 제관이 제의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자 흙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불이 나는 등 곤혹을 치렀다 한다. 이 일로 마을에서는 당산 신에 대한 영험담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지금도 당산제를 모실 때에는 부정을 가리는 등 엄격한 금기를 행하고 있다.
[절차]
제의 날짜는 연 1회, 음력 1월 15일이다. 원래 금곡동 동원 당산제의 절차는 상당에서 산신령에 제의를 지낸 다음 고당 할매를 모시는 중당, 진압 장군을 모신 하당, 거릿대 순으로 제를 지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의 절차가 간소화되어 근자에는 상당에서 산신제와 고당 할매제를 지낸 뒤 하당에서 진압 장군제를 지내고 있다.
제물의 종류와 진설 방식 및 제의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동일하다. 제의를 마친 후에는 제물의 일부를 떼어 내어 잡귀 잡신을 먼저 풀어먹인 후 제의 참석자들이 함께 음복한다. 당산제를 마친 후 달리 행하는 부대 행사는 없다.
[현황]
예전에 동원 마을에서는 마을 주민 중 깨끗한 이를 제주로 선정하여 금곡동 동원 당산제를 베풀었으나, 근자에는 인근의 절에 위탁하여 스님이 당산 제의를 주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