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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719
한자 安浩相
영어음역 An Hosang
이칭/별칭 한뫼,호연(浩然)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망양로111번길 65[동대신동 3가 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자|교육자
성별
본관 순흥(順興)
대표경력 동아대학교 대학원장
출생 시기/일시 1902년 1월 23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0년 - 동경 정칙영어학교 수학
수학 시기/일시 1925년 - 독일 예나대학 철학부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9년 - 독일 예나대학 철학부 박사 학위 취득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민족청년단 부단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8년 8월 - 문교부장관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55년~1960년 - 동아대학교 교수 겸 대학원장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60년 7월 29일 -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에서 출마하여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국제문화협회 총재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92~1997년 - 대종교 총전교로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99년 2월 21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활동지 동아대학교 -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공원로 32[동대신동 3가]지도보기
묘소 서울국립현충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2동 산44-7

[정의]

부산 동아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낸 학자이자 교육자.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한뫼, 호연(浩然). 1902년 음력 1월 23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지주 향반 가에서 아버지 안석제(安奭濟)와 어머니 서흥 김씨 김야동(金冶洞)의 5대 독자로 태어났다. 안호상(安浩相)이 태어난 입산 마을은 순흥 안씨 집성촌으로 백산(安熙濟) 안희제(安熙濟)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활동 사항]

안호상은 입산리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상경하여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일본 동경 정칙영어학교에서 수학하고, 중국의 중덕(中德) 동제의공대학을 졸업하였다. 1925년 독일 예나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1929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3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 부단장, 1948년 8월부터 1950년 5월까지 초대 문교부장관, 1949년 초대 학도호국단장을 역임하였다. 문교부장관 시절 일민주의(一民主義)의 이론적 틀을 마련하였다.

안호상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 그는 1952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범석(李範奭) 부통령 후보를 위해 선거 운동을 전개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조선민족청년단 동지로서 부산시 정구(丁區)에 출마한 김동욱(金東郁)의 후원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과 선거 뒤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열린 민병대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이 내란 선동죄와 국가 보안법·선거법 위반 등의 사유에 걸려 구속되었다. 그러나 3년간의 재판 결과 3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안호상은 1955년부터 1960년 무렵까지 동아대학교 교수 겸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부산에 내려와서 3일씩 머무르며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0년 7월 29일에 실시된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에 출마하여 참의원에 당선되었다. 1955년에 초대 한독협회(韓獨協會) 회장, 1969년 재건국민운동중앙회 회장, 1973년 마을금고연합회 회장, 1981년 학술원 원로 회원, 1978년부터 1989년까지 국제문화협회 총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981년부터 1991년까지 한성대학교 이사장, 1993년 경희대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는 대종교 총전교를 지냈다. 1999년 2월 21일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철학 강론』[동광당서점, 1942], 『우리의 취할 길』[문화당, 1947], 『우리의 부르짖음』[문화당, 1947], 『철학 논총』[을유문화사, 1948], 『민족의 소리』[문화당, 1949], 『세계 신사조론』[일민주의보급회, 1952], 『민주적 민족론』[어문각, 1961], 『배달의 종교와 철학과 역사』[어문각, 1964], 『민족의 주체성과 화랑 얼』[배달문화연구원, 1967], 『민족 독립의 철학적 원리』[배달문화연구원, 1971], 『청년과 민족 통일』[1975], 『단군과 화랑의 역사 철학』[1979], 『민족 정론』[사림원, 1982], 『나라 역사 6천년』[한뿌리, 1987], 『한 백성주의의 본바탕과 가치』[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4], 『민족 사상과 정통 종교의 연구』[민족문화출판사, 1996] 등이 있다. 이외에 회고록으로 『한뫼 안호상 20세기 회고록』[민족문화출판사, 1996]이 있다.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2동 산44-7번지에 있는 서울국립현충원 국가 유공자 1묘역 39호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학계와 교육계에 기여한 공로로 1971년 국민 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1974년 독일 최고 십자 훈장, 1977년 일본 학사회 교육과학 특별상, 1981년 외솔학회 학술상, 1991년 세계 한민족 평화상, 1994년 국민 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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