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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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券番 |
영어의미역 | Dongrae Gisaeng Association |
이칭/별칭 | 동래예기조합,동래권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쇠미로151번길 4-24[온천동 21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선애 |
[정의]
1910년 부산 동래 지역에서 설립된 기생 조합.
[설립 목적]
동래권번은 옛 동래부 소속 기생들이 그들 간의 결속을 다지고 공동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1910년 이운초(李雲初)를 대표자로 설립하였다.
[변천]
1912년에 명칭을 동래예기조합(東萊藝妓組合)으로 바꾸고 동래읍 교동[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부산지방기상청 부근]에 자리 잡았다. 동래예기조합은 1937년 중일 전쟁 중에 온천장 여관업자들의 요청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210번지로 옮겼다가, 6·25 전쟁 시기에 법인 조직으로 변경하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악원(國樂院)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1970년에는 ‘동래국악원’이라 하였고, 그 이후 ‘동래국악진흥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래권번 기생들은 어린 동기(童妓)들에게 가무(歌舞)를 가르치고, 가무를 연회자리에서 베푸는 일을 하였다. 주요 활동 무대는 동래 온천장의 고급 요릿집이었다. 기생들의 놀음이 시작되기 전에 요리상이 들어오는데 3원, 5원, 10원 등으로 값이 매겨져 있었다. 기생들의 화대(花代)[해옷값이라고 하고 상격(賞格) 또는 행하(行下)라고 하기도 한다]는 시간당 계산했는데, 처음 한 시간은 1원 50전이고 이후 매시간 1원씩으로 계산하였다.
기생 화대는 요릿집 주인이 손님들로부터 연회비와 함께 청구하여 받았다. 요릿집에서는 기생들에게 매일 확인 전표를 떼어주고, 매월 15일과 말일 두 차례로 모아 화대를 지급하였다. 매월 두 차례 수수료를 공제하고 조합으로 화대를 보내면, 기생조합에서는 기생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전표를 확인하고 일정액의 조합비를 공제하고 화대를 지급하였다. 이 때문에 인기도에 따라 기생들의 수입도 차이가 있었다.
기생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매일 정한 시간에 조합으로 출근하여 정해진 일과표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 판소리, 단가(短歌), 가야금 병창, 승무 순으로 교육 과정이 정해져 있었다. 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거나 성적이 좋지 않으면 활동을 제한하였다. 동래권번에서는 매월 한 번씩 기생들을 대상으로 기예 대회를 열어, 성적이 부족하면 별도의 교육을 받게 하였다. 이 기생들의 집합체를 ‘기생 조합’ 또는 ‘예기 조합’이라 하였으나 통칭 ‘권번 조합’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