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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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春元 |
영어음역 | Yi Chunwon |
이칭/별칭 | 원길(元吉),구완(九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우정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길(元吉), 호는 구완(九畹).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에 증직된 이세달(李世達)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이윤우(李允宇)이며,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이창(李瑒)이다. 어머니는 중종(中宗)의 부마인 능창위(綾昌尉) 구한(具澣)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춘원(李春元)[1571~1634]은 20세 때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1596년(선조 29)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 부정자에 임명되고, 이듬해 광양 현감으로 나가 남원을 포위한 왜군과 싸웠다. 1607년(선조 40) 7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서는 부산 곳곳을 돌면서 백성을 위무하고, 해운대, 태종대, 몰운대, 겸호대, 동래 온정, 정과정 등 동래 지역의 여러 명승과 고적을 둘러보았다. 이때 본 것들을 시로 써서 문풍(文風)을 일으켰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613년(광해군 5) 좌승지일 때 인목 대비(仁穆大妃)[영창 대군(永昌大君)의 어머니]를 폐해야 한다는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이듬해 승지로 복관되고, 병조 참의에 이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올랐다. 1617년(광해군 9)에는 충청도 관찰사로서 권신들이 인목 대비의 존호를 폐하고 대비에 대한 의식을 없애려고 하자 또 다시 극력으로 반대하여 파직당했다.
1620년(광해군 12) 지돈령부사로 명나라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안주에 파견되었다가 갑자기 중풍에 걸려 벼슬을 내놓고 돌아왔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인조(仁祖)가 구신(舊臣)들을 많이 등용하면서 한직(閑職)을 주었으나 사양하였다.
[학문과 저술]
남양의 홍지성(洪至誠)에게 글을 배우고,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인 박순(朴淳)에게 학문을 배웠다. 저서는 1656년(효종 7)에 간행된 문집인 『구완집(九畹集)』이 있다.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몰운대(沒雲臺) 입구에는 이춘원의 몰운대 시비가 서 있다. 이춘원은 몰운대를 보고 “호탕한 바람과 파도가 천만리 이어지는데/ 하늘가 몰운대는 흰 구름에 묻혔네./ 새벽 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이니/ 언제나 신선이 학을 타고 오는구나[浩蕩風濤千萬里 白雲天半沒孤台 扶桑曉日車輪赤 常見仙人駕鶴來]”라고 읊었다.
[묘소]
이춘원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산 56-9번지 함평 이씨 묘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