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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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萊府狀錄 |
영어음역 | Naebu Jangno |
영어의미역 | Internal Affairs Document |
이칭/별칭 | 『동래부 장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 김석(金鉐)이 올린 동래 부사의 장계를 모은 책.
[저자]
『내부 장록(萊府狀錄)』은 동래부에서 편찬한 것이다. 장계를 올린 사람은 동래 부사 김석[1804~?]으로, 그의 호는 금초(錦樵)이다. 김석이 쓴 『내부 일기(萊府日記)』는 1995년에 부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부산 사료 총서(釜山史料叢書)』 5권으로 영인·번역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동래 부사가 조정에 올린 장계를 기록해 두기 위하여 동래부에서 편찬한 것이다. 책 마지막에 동래 부사의 수결인 ‘사(使)’가 적혀 있다.
[형태/서지]
『내부 장록』은 필사본으로 전체 1책 48장이며, 책 크기는 45.5×28.0㎝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유일본이다. 표지 좌측에 ‘내부 장록(萊府狀錄)’, 우측에는 ‘자기미정월지팔월(自己未正月至八月)’이라고 적혀 있다. 1931년 4월 25일 조선총독부 도서관 등록 도장이 찍혀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청구 기호 한古朝 51-나60].
[구성/내용]
1859년(철종 10) 1월부터 8월까지의 내용이다. 첫 부분은 1월 9일 전임 부사 윤행모(尹行謨)와 십휴정(什休亭)에서 인수인계하고 도임했다는 내용이다. 그 다음부터는 중요한 사안을 장계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장계 내용은 크게 3부분이다. 대마도 선박, 영국 이양선(異樣船), 왜관에서 일어난 매매춘 사건이다.
황령산 봉군의 보고와 부산 첨사 장창환(張昌煥)의 치통(馳通)[아전들 사이에 주고받는 문서의 한 종류]에 근거하여 대마도에서 파견된 일본 선박의 동태와 관련한 내용을 보고한 것이다. 확인이 잘 안 되는 일본 선박이 오거나 표류하였을 경우, 그것을 탐문하여 조사하는 과정을 중앙에 상세하게 보고한 것이다. 보고 절차는 먼저 황령산 봉군의 보고가 있고, 잇달아 부산 첨사의 치통이 도착하면, 이에 근거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대마도에서 오는 선박은 연례 송사선 등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오는 선박도 있지만, 표류한 선박도 있다. 1859년 5월 9일 진시에 백색 돛 3개를 단 이양선 1척이 동래부 용당포 외양(外洋)에 표류하여 출몰하였는데, 이 배는 영국 배였다. 이에 대한 상세한 보고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선원, 용모, 언어, 항해 목적, 대포나 조총 같은 무기, 선박 규모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석이 쓴 『내부 일기』의 5월 10일, 14일, 6월 9일, 19일, 29일, 7월 3일 일기에도 이양선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5월 10일에는 용당포에 정박한 이양선이 왜관 선창에 옮겨 정박하였다. 그리고 5월 14일에는 이양선 선원이 절영도 높은 봉우리에서 홍기를 세우고 대포 21발을 쏘아서, 그 소리가 동래부에까지 들렸다고 적고 있다.
동래부 사하면 신초량리에 거주하는 이문주(李文周)[24세]와 초량 왜관 수문직(守門直) 김용옥(金用玉)[48세]이 동래부 남촌면 상단리에 거주하는 좌수영 퇴비(退婢) 출신인 조금홍(趙錦紅)[19세]을 데리고 6월 5일 밤에 초량 왜관에 잠입하여 매매춘을 하였다가 발각된 사건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조금홍은 동래부 사하면 구초량리 출생으로, 14세 때 좌수영의 비로 입역(入役)하였다가, 17세에 면역한 여성이었다. 매매춘은 김용옥의 주도 하에 일어났다. 상대한 일본인은 초량 왜관 서관의 식척(食尺)인 석전등차랑(石田藤次郞)이었다.
이들 조선인은 동전 8냥을 받고 매매춘에 가담하였다. 그 대가로 김용옥은 3냥, 이문주는 2냥, 조금홍은 3냥을 차지하였다. 조금홍과 매매춘을 한 석전등차랑은 대마도로 이송되어 처벌받았다. 김용옥은 왜관 문 밖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이문주는 엄한 벌을 받은 후 섬에 유배되었다. 조금홍은 곤장 100대를 맞고 3년간 귀양 보내졌다. 동래 부사 김석과 부산 첨사 장창환은 파직되었다. 조금홍의 매매춘 내용은 6월 9일, 7월 2일 장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매매춘 사건은 『내부 일기』의 6월 6일, 25일, 7월 3일, 7일 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859년의 8개월 동안의 부산 지역사, 한일 관계사 등이 집중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양선의 출몰과 이에 대한 동래부의 대응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조금홍의 매매춘과 관한 상세한 보고를 통해 조선인 여성과 일본인 남성 사이에서 일어난 왜관 매매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