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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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仲煥 |
영어음역 | Jeong Junghwan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승충 |
[정의]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역사학자.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아버지는 정상호(丁常昊)이고 어머니는 박수(朴秀)이다.
[활동 사항]
정중환(丁仲煥)[1914~200]은 1914년 11월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노포리[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에서 태어났다. 1932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던 명정보통학교[현 청룡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조사이중학교[城西中學校]와 불교 재단인 다이쇼대학[大正大學]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41년 귀국 후 범어사 불교 전문 강원의 전임 강사로 동양사를 가르쳤다. 이때 전 동국대학교 총장 허영호(許永鎬) 등 불교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945년 광복 이후 동래공립중학교 교유(敎諭), 동래여자중학교 교감을 거쳐, 1948년 동아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56년 부산대학교로 옮겨 10년간 재직하면서 사학과의 기반을 다졌고, 한일문화연구소장과 도서관장을 맡아 학문 연구 및 대학 발전을 위해 힘썼다. 1963년 동아대학교로 옮겨 정년 퇴임할 때까지 사학과 교수,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일찍부터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를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정중환은 동아대학교 박물관[1959년 개관]의 유물 관리와 운영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생전에 경상남도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부산시 교육위원회 교육 위원, 부산직할시사편찬위원회 부위원장, 동래구지편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1년 세상을 떠났다. 자녀는 2남 2녀를 두었다.
[학문과 저술]
정중환은 40여 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한국사 연구에 전념하였다. 특히 가야 및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로국고(瀆盧國考)」를 통해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 한조(東夷傳韓條)에 보이는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의 위치를 부산 동래 지역이라고 밝힌 정종환의 주장은 많은 문헌 학자 및 고고학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한국사 연구의 기본 사료가 되는 중국 정사(正史) 및 우리나라 고전을 번역, 보급함으로써 역사 연구가들에게 많은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였다. 그 밖에 다수의 향토사 서적 편찬에 간여하여 부산의 지역사 정립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가야사 관련 연구 성과로는 『경남의 왜성지(倭城址)』[공저,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 1961], 『가라사초(加羅史草)』[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 1962], 『가라사 연구』[2000] 등이 있다. 번역서는 『역주 고설 중국 사료초(譯註考說中國史料抄)』[1980],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 이로(李魯)의 『용사 일기(龍蛇日記)』, 정탁(鄭琢)의 『용사 일기(龍蛇日記)』, 신숙주(申叔舟)의 『해동 제국기(海東諸國記)』, 김기수(金綺秀)의 『일동기유(日東記游)』, 『역주 고려사』 11권[공동 번역, 동아대학교 고전연구소, 1963~1972] 등이다. 향토지로는 『경상남도지』 3권 및 부록 『경상남도 여지 집성(慶尙南道輿誌集成)』[1958~1963], 『부산시지』[공저, 1974], 『부산시사』 4권[공저, 1989~1991], 『동래구지』[공저, 1995]가 있으며 『동래부지(東萊附紙)』를 번역하기도 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제1회 경상남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