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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12
영어의미역 Hwaebaji in Busan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4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비정 지역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4동 일대

[정의]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4동 일대를 조선 후기에 일컬었던 지명.

[개설]

영남 대로(嶺南大路)의 종착 고을인 동래 도호부에서 여러 갈래의 지선(支線)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중 가장 많이 통행한 길은 다대포로(多大浦路)로, 1872년(고종 9) 조정에서 마지막으로 제작한 군현 진도(郡縣鎭圖)에서는 동래읍성에서 다대포까지 50리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길은 동래읍성~세병교~홰바지~동래부 서면~부산진~부산포~대치 고개[부산광역시 중구 아미동 고개]~다대포 진영(鎭營)으로 이어졌다.

18세기에 그려진 『동래 부사 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 동래 부사가 초량 왜관(草梁倭館)에 온 일본 사신의 인사를 받기 위해 행차하던 길도 다대포로일 것이다. 이와 같이 동래부 관내(管內)의 지선로인 다대포로상에서 홰바지 지점을 떠올려 보면, 단순히 부산장(釜山場)을 오고간 행상들과 관련된 지명만은 아닐 것이다. 다대포로를 통해 연결되는 초량 왜관다대포진 등을 감안하면 동래부 관내의 군사 및 행정 업무와 관련된 관원들의 통행로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명칭 유래]

홰바지는 해받이, 해바지, 해맞이, 해마지, 홰받이, 거점(炬店) 마을 등으로도 불렸다. 홰바지의 ‘홰’는 횃불을 만드는 싸리나 갈대 등 잡목을 말한다. 그리고 최근에 간행된 ‘부산 도로 지도’에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4동거성중학교와 양지재활원 사이를 ‘거점’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째 해운대 쪽에 있는 장산에 해가 가려 아침 일찍 서둘러 부산장으로 가는 사람이 거제리까지 와야 해를 볼 수 있어 부른 이름이다.

둘째, 동래부에서 부산진으로 나들이 갔다 돌아오면 하루해가 걸리는 지점이라서 부른 이름이다. 셋째, 동래읍민이 부산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올 때, 가족들이 횃불을 들고 마중 나간 곳이라서 부른 이름이다. 넷째, 동래 부사가 부산진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올 때, 이 마을 앞에서 횃불을 들고 마중하였다고 하여 부른 이름이다. 다섯째, 동래 부사의 야간 통행이 있을 때 횃불을 들고 마중 나간 곳이라서 부른 이름이다. 이상의 견해는 대체로 이곳이 해[햇빛]나 횃불을 들고 마중한 일과 관련되는 지명으로 보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홰바지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던 옛 전차 정류소[현 거제동 현대 아파트 부근] 지점을 일컫는다. 이와 함께 거제리에서 거제 시장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위치한 육교 주변 일대에 있던 마을을 홰바지 마을이라고 한다. 그런데 홰바지 마을을 ‘거점 마을’이라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통상적으로 조선 후기 ‘점(店)’이나 ‘점촌(店村)’은 일반적으로 수공업장이나 수공업을 하는 마을을 의미한다. 홰바지 마을을 거점 마을이라 부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수공업 장인의 ‘점’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즉 동래부에서 사용하는 횃불을 만드는 곳이 자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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