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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428
한자 三聖臺
영어음역 Samsung-dae
이칭/별칭 일광 삼성대,세성대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명승지|대(臺)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21년 - 기장에 유배 온 윤선도가 삼성대에서 동생과 작별하며 지은 시가 전함
해당 지역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에 있던 명승지.

[개설]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 명승의 삼성대(三聖臺) 조에 “군(郡)의 동쪽 1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차성가(車城歌)」에는 “삼성대 좋은 약수 만병 회춘 화전이오”라는 구절이 있다. 『기장현 읍지』는 1899년(고종 36)에 편찬되었고, 「차성가」는 1860년(철종 11)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므로, 삼성대와 삼성대 약수터가 최소한 1860년 이전부터 기장의 주요 명소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성대는 기장에 유배 온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1621년(광해군 13) 동생과 이별하면서 「증별소제(贈別少弟)」 2수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며, 삼성대라는 표지석이 세워진 언덕 아래의 바닷가에 2005년 4월 이를 기념한 ‘고산 윤선도 선생 시비’가 세워졌다. 삼성대가 기장에서 임랑과 월내를 거쳐 서생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기장에 유배 온 윤선도삼성대에서 서제(庶弟)인 윤선양(尹善養)을 떠나보내면서 시를 짓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증별소제」 2수는 『고산 유고(孤山遺稿)』 권1에 수록되어 있는 칠언 절구로, “신유년 8월 25일 삼성대에 이르러 보내면서 지었다”는 자주(自註)가 부기(附記)되어 있다. ‘동생과 헤어지면서 시를 지어 주다’라는 뜻의 「증별소제」 2수는 이러하다.

“네 뜻을 따르자니 새로운 길에 얼마나 많은 산이 가로막을 것이며/ 세상의 흐름을 따르자니 얼굴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어이하리오. 이별할 때가 되니 천 갈래로 흐르는 눈물이/ 너의 옷자락에 뿌려지면서 점점이 아롱지는구나[若命新阡隔幾山 隨波其奈赧生顏 臨分惟有千行淚 灑爾衣裾點點斑].”

“내 말은 내달리고 네 말은 더디기는 하나/ 이번 길에 어찌 차마 따라오지 말라고 하리오. 가장 무정한 것은 이 가을날의 해이니/ 헤어지는 사람을 위해 잠시도 멈추어주질 않는구나[我馬騑騑汝馬遲 此行那忍勿追隨 無情最是秋天日 不爲離人駐少時].”

윤선도는 기장에 유배되고 난 뒤 「증별소제」 2수 외에 ‘병중에 회포를 풀다’는 뜻의 「병중 견회(病中遣懷)」, ‘장난 삼아 노방인(路傍人)에게 주다’는 뜻의 「희증로방인(戲贈路傍人)」, ‘홍헌의조 낭자에게 답하다’는 뜻의 「답홍헌조낭(答洪獻趙娘)」, ‘일일화(一日花)[楮花,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지품변증설」]를 읊다’는 뜻의 「영일일화(詠一日花)」 등도 지었다.

[명칭 유래]

삼성대의 삼성(三聖)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성교(三聖敎)에서 모시는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 등을 가리킨다는 설과 원효(元曉), 의상(義湘), 윤필(尹弼) 등을 가리킨다는 설, 고려 말의 삼은(三隱)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을 가리킨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설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문헌상의 기록이나 주변의 인문 지리적 환경과도 이렇다 할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는 가설에 불과한 듯하다.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윤필과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을 현자도 아닌 성인이라 칭하였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보다는 ‘세미성대’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세미성대’를 줄이면 ‘세성대’가 되고 이를 한자식으로 바꾸면 ‘삼성대(三聖臺)’가 되기 때문이다.

‘세미성’의 ‘세미’는 ‘샘’의 사투리 발음이고, ‘성’은 ‘섞’이 발음의 편의상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섞’은 배를 정박하기 위해 배 밑에 대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의 ‘서까래’와 같은 말로 보인다. 삼성대의 남쪽에 약수터가 있고, 삼성대 앞의 모래사장에는 배를 대기 위한 섞이 깔려 있기 때문에 샘과 섞을 합해져 ‘세미섞’이 되었고 이것이 삼성이 되어 ‘삼성대’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자는 다르지만 기장과 근접한 동래에도 삼성대(三姓臺)가 있는데, 동래 삼성대의 경우 『동래부지(東萊府誌)』 고적(古蹟)에 “안(安), 송(宋), 옥(玉)씨 등 세 성의 시조가 살았던 곳이어서 삼성(三姓)이 되었다”라고 밝혀져 있다. 그런데 묘하게 동래 삼성대의 부근에도 ‘옥샘’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샘이 있었다. 기장의 삼성대와 동래의 삼성대뿐 아니라 제주도의 삼성혈(三姓穴) 역시 ‘샘’과 유연성(有緣性)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삼성’의 ‘삼’이 샘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기장의 삼성대란 명칭은 ‘샘섞’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머지 세 가지의 통설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자연 환경]

삼성대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자연 환경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방법이 없으나, 삼성대가 위치한 일광 해수욕장이 남쪽 기장군 일광면 학리와 북쪽 이천리 사이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 항구가 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선의 한쪽에 돌기처럼 튀어 나온 곳이 삼성대이니, 삼성대는 만조 때 배를 정박하기 매우 좋은 자연 환경이라 하겠다. 삼성대가 ‘샘’과 배를 정박하는 곳이라는 ‘섟’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은 이러한 자연 환경에 기인한다.

[현황]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남쪽 해안의 작은 언덕에 최근 세워진 것으로 한자로 쓴 ‘삼성대’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 삼성대가 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해운대 해수욕장 역시 한가로운 포구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장의 삼성대 역시 일광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작고 아늑한 포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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