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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331
한자 金炯珠
영어음역 Gim Hyung Joo
이칭/별칭 근산(近山)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유두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선우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사
성별
본관 김녕(金寧)
대표경력 근산의원 개원
출생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6년경 - 근산의원 개원
몰년 시기/일시 1967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유두리
활동지 근산의원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으로 현대식 의료 기관인 근산의원을 설립한 의사.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근산(近山). 1906년 경상남도 양산군 좌이면 유두리[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유두리]에서 아버지 김욱권(金昱權)과 어머니 홍기경(洪璣敬) 사이의 3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김형주(金炯珠)의 집안은 대지주였던 아버지가 개화의 바람을 타고 광산업에 관여했다가 재산을 다 날리고 몰락한 상태였다.

[활동사항]

김형주는 6세 때 동네 서당에서 6개월간 한학을 배웠는데, 『소학(小學)』과 『대학(大學)』까지 익힐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집안의 몰락으로 외가가 있는 양산으로 이사한 후 8세 때부터 머슴살이를 할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큰형인 동산(東山) 김형기(金炯璣)가 동산병원을 개업했는데, 그 곁에서 진료를 도우며 약 10년간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하였다. 이때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원농림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하득(金夏得)과도 인연을 맺어, 방학을 이용하여 수학하였다. 김형주는 22세 때 중학 과정 졸업 검정 시험에 합격하고, 28세 때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후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련을 거쳐, 고향 구포에서 근산의원(近山醫院)을 개원하였다.

그 후 김형주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구포 애린원의 고아들을 돌보면서 평생 동안 무료 진료를 해 주었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인술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인근 김해와 양산 등지에서도 많은 환자가 찾아왔고, 한때 김해에 행림병원을 분원으로 설치하여 진료하였다. 또 간디스토마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호스로 약을 투입하는 시술을 개발하였고, 환자의 병을 정확히 판정하는 뛰어난 의술로 부산부립병원의 일본인 의사들도 존경과 감탄을 보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부산 북구 향토지』(부산직할시 북구청·부산낙동향토문화원, 1991)
  • 낙동문화원(http://nakdong.kccf.or.kr)
  • 국사편찬위원회(http://www.history.go.kr)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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