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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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炯珠 |
영어음역 | Gim Hyung Joo |
이칭/별칭 | 근산(近山)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유두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선우성혜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으로 현대식 의료 기관인 근산의원을 설립한 의사.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근산(近山). 1906년 경상남도 양산군 좌이면 유두리[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유두리]에서 아버지 김욱권(金昱權)과 어머니 홍기경(洪璣敬) 사이의 3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김형주(金炯珠)의 집안은 대지주였던 아버지가 개화의 바람을 타고 광산업에 관여했다가 재산을 다 날리고 몰락한 상태였다.
[활동사항]
김형주는 6세 때 동네 서당에서 6개월간 한학을 배웠는데, 『소학(小學)』과 『대학(大學)』까지 익힐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집안의 몰락으로 외가가 있는 양산으로 이사한 후 8세 때부터 머슴살이를 할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큰형인 동산(東山) 김형기(金炯璣)가 동산병원을 개업했는데, 그 곁에서 진료를 도우며 약 10년간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하였다. 이때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원농림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하득(金夏得)과도 인연을 맺어, 방학을 이용하여 수학하였다. 김형주는 22세 때 중학 과정 졸업 검정 시험에 합격하고, 28세 때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후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련을 거쳐, 고향 구포에서 근산의원(近山醫院)을 개원하였다.
그 후 김형주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구포 애린원의 고아들을 돌보면서 평생 동안 무료 진료를 해 주었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인술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인근 김해와 양산 등지에서도 많은 환자가 찾아왔고, 한때 김해에 행림병원을 분원으로 설치하여 진료하였다. 또 간디스토마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호스로 약을 투입하는 시술을 개발하였고, 환자의 병을 정확히 판정하는 뛰어난 의술로 부산부립병원의 일본인 의사들도 존경과 감탄을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