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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225
한자 金翼基
영어음역 Gim Ikgi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해관로 58[중앙동 4가 29-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치인
성별
대표경력 문화방송 취체역[이사] 회장
출생 시기/일시 1916년 2월 19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문화방송 취체역 회장
몰년 시기/일시 1992년 10월 1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시
학교|수학지 니혼대학 전문부 법학과 - 일본 동경도
활동지 문화방송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29-3

[정의]

부산 문화방송 초대 취체역 회장을 지낸 인물.

[가계]

김익기(金翼基)는 1916년 2월 19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큰아들 김도일(金度鎰)[1951~]을 비롯한 3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김도일은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활동 사항]

김익기는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안동주조주식회사 전문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이후 안동금융조합장이 되었으며, 안동읍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헌법 기초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제헌 의회[경상북도 안동 갑], 제2대[안동 을, 무소속], 제3대[안동 을, 자유당], 제4대[안동 을, 자유당], 제6대[전국구, 민정당] 등 총 5회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또 국회 의원 시절 민정당 중앙위원회 부의장이면서 민정당 당무위원이었다. 민중당 시절에는 중앙 상무위원과 국제의원연맹[IPU] 한국 대표를 역임하였다.

김익기는 1958년 문화방송[현 MBC 부산문화방송] 설립 당시 체신부의 설립 허가를 받아내는 데 많은 정치적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문화방송 설립의 첫째 관문에서 설립 불가라는 난관에 봉착한 김상용(金相用)은 당시 자유당 실력자의 한 사람인 김익기 등을 중심으로 문화방송(주)창립발기인회를 조직하여 모체를 만든 다음, 1958년 1월에 다시 설립 허가원을 체신부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좀체 허가가 나지 않았다.

정부의 직접 관장 하에 있지 않은 방송을 이단시하여 개인이 민간 방송국을 세운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공보처의 관료적 고정 관념이 문제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상업 방송은 저속할 우려가 있으며 광고 방송으로 국민의 소비성 변화가 걱정된다는 등이 그 바닥에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정부 당국의 이러한 견제에 걸려 쉽게 허가를 받지 못하고 시간만 끌게 됐는데, 정환옥(鄭煥玉)의 매부 김영출(金榮出)의 적극적인 활동과 김영출의 매부인 김익기의 정치적 역할, 김상용의 친아우 김종만(金鐘萬)의 뒷받침 등이 결국 결실을 맺어 허가를 따내게 되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김익기는 초대 문화방송 취체역 회장을 지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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