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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부산 고지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095
한자 東萊釜山古地圖
영어의미역 Dongnae Busan Gojido[Old Map of Dongnae in Busan]
이칭/별칭 국립중앙도서관소장 부산고지도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도
서체/기법 채색 필사
소유자 국립중앙도서관
관리자 국립중앙도서관
현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로 664

[정의]

19세기 후반 동래부의 지형을 회화식으로 그린 군현 지도.

[형태 및 구성]

「동래 부산 고지도(東萊釜山古地圖)」는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82.7㎝, 세로 133.4㎝이다. 내용면에서 볼 때 주요 관방 시설로서 동래읍성, 좌수영성, 부산진성, 다대진성, 금정산성(金井山城) 등이 그려져 있다. 동래읍성의 경우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1872郡縣地圖東萊府地圖)」에서는 성곽의 방어 시설인 치와 옹성 등이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에 「동래 부산 고지도」는 성내의 주요 건물과 동문, 남문, 암문, 서문, 북문, 장대만이 그려져 있다. 한편, 읍성 주변에는 서원과 향교, 그리고 남문 밖 농주산(弄珠山)에는 축성비(築城碑)가 표기되어 있다, 한편 남쪽 온천천으로는 광제교와 이섭교가 보인다.

금정산성의 경우 중성(中城)을 포함하여 지형지물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성내의 시설물의 경우 동문·서문·남문·북문과 금정진, 지소(紙所), 국청사(國淸寺), 미륵암(彌勒庵) 등이 그려져 있어 대체로 다른 지도와 유사하다. 경상 좌수영성의 경우 동향한 중심 건물로 보이는 와가 3채를 중심으로 동·남·북문이 그려져 있으며 동문 밖으로는 선소(舡所), 군선 3척이 있다. 부산진성의 경우도 자성대를 중심으로 주요 건물이 그려져 있으며 서문 밖으로는 영가대와 군선 3척이 강소에 그려져 있다. 다대진성의 경우 주요 건물과 부속 건물 등이 동·남·서문과 함께 위치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들 성곽의 평면 윤곽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실제 조사된 평면 형태와 유사하다.

봉수(烽燧)의 경우 응봉(鷹烽), 귀봉(龜烽), 황령봉(荒嶺烽), 계명봉(鷄鳴烽), 간비오봉(干飛烏烽) 등이 붉은 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부산진성의 남쪽으로는 1678년 두모포 왜관에서 이전된 조선 시대 대일 무역의 중심지였던 초량 왜관이 그려져 있는데 왜관과 연대청, 용미산 북안의 접안 시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왜관의 북편으로는 성신당(誠信堂)과 설문(設門), 초량 객사(草梁客舍) 등도 그려져 있다. 사찰로서는 범어사(梵魚寺)를 비롯하여 선암사(仙岩寺), 마하사(摩訶寺), 운수사(雲水寺) 등이 그려져 있으며, 몰운대(沒雲坮), 강선대(降仙坮), 팔경대(八景坮), 십휴정(什休亭), 연무정(鍊武亭), 정과정(鄭瓜亭), 삼성대(三姓坮) 등의 명승지와 정자, 정묘(鄭墓) 등의 지명도 보인다.

행정 단위로서는 중심지인 읍내면(邑內面)을 비롯하여 북면(北面), 서하면(西上面), 동상면(東上面), 동하면(東下面), 사상면(沙上面), 사하면(沙下面), 남촌면(南村面), 부산면(釜山面), 동평면(東平面) 등이 표시되어 있다. 1868년(고종 5)에 동평면동평면부산면으로 분리되고 사천면은 사상면과 사하면으로 분리되었음을 감안할 때 「동래 부산 고지도」는 적어도 1868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상면 감천리의 경우 1899년의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에만 지명이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동래 부산 고지도」 제작의 상한을 이 시기와 연결시킬 수도 있다. 다만, 조선 시대 고지도에 자주 그려지는 대마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는 점이 눈에 띈다.

「동래 부산 고지도」는 전반적으로 산과 하천, 성곽과 관아, 방파제와 선박 등이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부산 지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된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이다. 조감도의 시점을 이용하여 지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상단부의 육지와 하단부의 바다를 대각선으로 구획한 화면 구성은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특징]

「동래 부산 고지도」는 시점을 동래성의 남쪽에 두고 동으로는 청사포, 서로는 낙동강, 남으로는 몰운대, 북으로는 두구동반송동을 경계로 한 옛 동래군을 장방형의 대형 한지에 수묵 담채의 조감도식으로 그린 채색 회화식 지도이다. 「동래 부산 고지도」는 지방 군현 지도 계열로서,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부산 고지도(釜山古地圖)」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와 같은 형식이다. 지도의 전체 구성은 「부산 고지도」와 유사하나 산맥의 줄기를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였으며, 도로와 주요 하천이 조감도처럼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두 지도를 비교할 때 금정산 고당봉 암산의 표현과 산세의 회화적 구성은 「동래 부산 고지도」가 우수하며 나머지는 「부산 고지도」가 상세하다.

또한 「부산 고지도」가 「동래 부산 고지도」보다 세밀하여, 금정산성 각 성문의 안쪽에 문장청이나 문직가로 보이는 와가(瓦家)가 따로 표현되었다. 이로 볼 때 「동래 부산 고지도」를 모본으로 「부산 고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부산 고지도」는 주요 마을의 지명 아래에 읍치로부터의 거리가 병기되어 있으며 면의 명칭을 황색의 원안에 기재한 반면, 「동래 부산 고지도」는 주색의 사각형 안에 기재하여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푸른색의 담묵이 주조색이고 암산의 표현에 일부 담주를 사용하였다. 경물의 외곽선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는 먹선으로 표현되었다. 산맥과 산의 처리에서 높은 암산은 골필(骨筆)[먹지를 대고 복사할 때 쓰는 필기도구]의 수직준(垂直皴)[조선 후기에 활약한 겸재 정선(鄭歚)이 창안한 준법으로, 예리한 필선을 수직으로 죽죽 그어 나타냄]을 사용했으며, 야산과 낮은 구릉은 미점(米點)[미법 산수(米法山水)의 묘법으로, 산의 수목을 윤묵(潤墨)에 의한 큰 흑점을 붓 몸을 옆으로 뉘어 찍어서 나타내는 것을 말함]과 피마준(披麻皴)[갈필(渴筆)에 의해 약간 물결 짓는 필선으로 베 섬유를 푼 것 같은 꺼칠꺼칠한 감촉을 가지며, 산의 겉면을 표현하는 데 적용함]으로 표현하여 암산의 날카로움과 토산의 부드러움을 나타내었다. 전반적인 필치와 암산과 토산의 대비, 수직준과 미점의 사용은 정선 일파의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연결되어 있어 진경산수화 양식의 회화식 지도가 크게 유행한 19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동래 부산 고지도」는 「부산 고지도」와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와 함께 대표적인 동래부의 회화식 지도라 할 수 있다. 「동래 부산 고지도」는 부산 지역의 상세한 지형지물을 기록하고 있으며 고지명의 위치 비정 및 향토사 연구에 실증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제작 시기가 19세기 말로 조금 늦으나, 다른 지도에 비해 회화적 필치가 뛰어나며 지형지물이 정밀할 뿐 아니라 「부산 고지도」에 비해 담채와 선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회화적 성향이 강하다. 조선 시대 동래 지역을 그려낸 대표적인 회화식 지도로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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