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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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相學 |
영어음역 | Sin Sanghak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1동 99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하유식 |
[정의]
제헌 국회 의원을 지낸 부산 출신의 정치인이자 경제인.
[가계]
신상학(辛相學)은 1913년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인은 박순덕이며, 아들은 6·25 전쟁 중에 사망하였다.
[개설]
신상학은 소학교를 졸업하고 상업에 종사하였다. 해방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남도 도 간부를 지냈고, 민족청년단 경상남도단부 부단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김해 갑구에 출마하였다. 이 선거에서 신상학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제2대와 제5대 국회 의원을 지낸 최원호와 맞붙어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신상학은 국회 산업위원회에서 만든 「농지개혁법」이 국회에 상정되자 이 법안의 전면 철폐를 주장하였다. 그는 1937년에 일본인이 창업하고 미군정기 한국인에게 불하된 조선일모주식회사(朝鮮一毛株式會社) 이사장으로 1949년 5월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모직 공업 분야의 문외한이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1년 만에 물러났다.
1949년 11월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창당한 대한국민당의 총무부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제헌 국회 의원들의 친목 단체인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72년 11월에는 10월 유신을 적극 지지하는 제헌동지회 성명서에 서명하고 동참하였다. 1975년 2월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1동 994번지 자택에서 고질병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부인 박순덕은 2008년 101세로 자유신당의 최고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