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969
한자 金寧洙
영어음역 Gim Yeongsu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산10-1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차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경력 민중당 부산지부장
출생 시기/일시 1952년 3월 21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79년 - 한신대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80년 3월 -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목사 안수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유인물 배포
활동 시기/일시 1982년~1984년 - 울산 형제교회에서 목회자로 시무
활동 시기/일시 1986년~1990년 - 부산 우리교회에서 목회자로 시무
활동 시기/일시 1987년 5월 20일 - 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 집행 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0년~1992년 - 민중당 부산지부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2년 -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부대표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8년 7월 - ‘작은이를 생각하는 사람들’ 설립 및 상임 대표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4년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7년 -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자문 위원 역임
몰년 시기/일시 2002년 8월 22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3년 8월 23일 - 고 김영수 목사 1주기 추모 기도회 및 문화제 개최
추모 시기/일시 2003년 8월 31일 - 고 김영수 목사 추모 1주기 예배 거행
추모 시기/일시 2007년 8월 21일 - 5주기 추모 행사 개최
추모 시기/일시 2011년 6월 24일 - 부산 지역 기독교계 민주 열사에 대한 추모 예배 거행
출생지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마온리 343
학교|수학지 한국신학대학교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5동 산129
학교|수학지 서울대학교 - 서울특별시 관악구 대학동 산239-1
활동지 형제교회 - 울산광역시
활동지 우리교회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믿음교회 - 부산광역시
활동지 민중당 부산지부 - 부산광역시
묘소 국립 5·18 민주 묘역 - 광주광역시 북구 운전동 산34

[정의]

1980년대 이래 부산에서 민주화 운동·진보 정치 운동·통일 운동에 헌신한 목사이자 사회 운동가.

[개설]

아버지는 김영정이고, 어머니는 이종연이다. 장인 최성묵은 중부교회 목사이자 부산 지역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다.

[활동 사항]

김영수(金寧洙)[1952~2002]는 1952년 3월 21일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마온리 343번지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79년 무렵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8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는데, 때마침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자 5·18의 진실을 알리고, 계엄군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는 유인물을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김영수는 구속되었고, 군대에 강제 징집되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울산의 형제교회[1982년~1984년], 부산의 우리교회[1986년~1990년]와 믿음교회[1993년~2002년] 등에서 목회자로 시무하였다. 동시에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였다.

1987년에는 6·10 박종철(朴鍾哲) 군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와 관련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고, 부산 지역의 6월 민주 항쟁을 이끈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 본부[약칭 국민운동 부산 본부]의 상임 집행 위원으로 6월 민주 항쟁에 앞장섰다. 또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의 부위원장과 인권 위원장을 역임하며 기독교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1990년 부산민족민주운동연합의 부대표를 역임하였고, 진보 정치의 발전을 위하여 1990년 민중당 부산지부장을 맡고, 민중당 부산진구 지구당위원장으로서 총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이후 1992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부대표를 역임하였다. 또 부산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 및 지도 위원, 주거권 실현을 위한 부산시민연합 공동 대표, 국가보안법철폐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공동 대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노력하였다.

1997년에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의 자문 위원 등을 통해 노동 인권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1998년부터는 기근으로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작은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대북 민간 지원 단체를 설립하고, 상임 대표로서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김영수는 불의에 대해 타협 없는 투쟁을 실천하는 단호함과 함께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함께 가진 성직자였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우던 김영수는 2002년 8월 22일 불의의 병[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상과 저술]

김영수의 사상은 민중 신학에 입각한 진보적 민주주의로 이해되고 있다. 별도의 저술은 없다.

[묘소]

묘소는 광주에 있는 국립 5·18 민주 묘역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5·18 민주화 운동 유공자이며, 2003년 8월 23일에 믿음교회,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작은이를 생각하는 사람들’ 등의 주관으로, 고 김영수 목사 1주기 추모 기도회 및 문화제를 민주 공원에서 개최하였다. 2003년 8월 31일에는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주관으로, 고 김영수 목사 추모 1주기 예배를 믿음교회에서 거행하였다. 2007년 8월에는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 공동으로 5주기 추모 행사를 거행하였고, 2011년 6월 24일에는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주최로 김영수 목사를 포함한 부산 지역 기독교계 민주 열사에 대한 추모 예배를 중부교회에서 거행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