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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동 조개더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888
한자 瀛仙洞-
영어의미역 Youngseun-dong shell mound
이칭/별칭 영선동 패총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동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조개더미
크기 20~50㎝ 이상[두께]
소유자 개인
관리자 부산광역시 영도구청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3년연표보기 - 일본인 아리미츠가 수습 조사를 함
훼손 시기/일시 1933년 이후연표보기 - 산복 도로 개설 이후 도시화로 훼손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5년 5월 16일 -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덧무늬 토기는 현재 보물 제597호로 지정됨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출토 유물 소장처 동아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조개더미.

[개설]

1933년경 일본인 아리미츠[有光敎一]가 수습 조사를 하였다. 영선동 조개더미는 원래 해안에서 170m가량 떨어진 지점에 있는 구릉의 북쪽 사면 아래에 형성된 조개더미 유적인데, 유적이 형성될 당시 영도의 지형은 현재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원래의 지형은 남항동 일대에 깊은 내만(內灣)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1920년대를 거치면서 부분 매립이 이루어졌고, 현재는 완전히 매립되어 해안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신석기 시대 전기 단계의 것들로 확인되었다.

[위치]

영선동 조개더미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 있는 남항초등학교 일대에 있었다.

[형태]

1933년 조사 당시에도 매립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는데, 해안에서 170m 떨어진 거리는 매립된 지형을 기준으로 설명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은 330.579㎡[100평]과 396.694㎡[120평] 넓이의 조개무지 2곳이 50~60m 간격으로 각각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산복 도로 조성 과정에서 확인되었으며, 조개더미의 두께는 20~50㎝ 정도이지만, 아리미츠가 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조개더미 상단부는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의 층위는 보다 두꺼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

덧무늬 토기, 지두문(指頭紋)[손가락 끝으로 밀어 만든 무늬] 토기, 자돌문(刺突文)[끝이 뾰족하거나 둥근 도구로 찔러 만든 문양] 토기, 눌러찍기 토기[압인문 토기]를 비롯하여 간 돌도끼, 조개 팔찌 등이 출토되었으며, 출토된 유물 일부는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아울러 토기에 시문된 특징에 따라 눌러찍기 토기 단계로 구분하면서 전기 단계의 표지(標識) 유물로 분류되었으며, 이 중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주둥이 달린 덧무늬 토기[융기문 토기(隆起紋土器)]는 보물 제597호로 지정되었다.

[현황]

당시 조성되었던 산복 도로는 현재의 영도 남항초등학교 인근 지역에 조성된 산복 도로로 판단된다. 조사 당시 이미 산복 도로가 조성 중이었기 때문에 시가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은 그 위치와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으며, 도시화 과정에서 유적이 훼손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선동 조개더미는 남부 지역 신석기 전기 단계의 대표적 유적이며, 남해안 신석기 전기 단계 토기를 이 유적의 명칭을 따라 영선동식 눌러찍기 토기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 유적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현재 영선동 부산은행 앞에 영선동 조개무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한자명 표기

조개더미 = 貝塚
  • 답변
  • 디지털부산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지털부산문화대전은 한자 표기 시 반드시 한글과 1대 1로 일치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한자를 뜻으로 의역하여 표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고학자님의 의견은 수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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