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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반제전위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867
한자 東萊反帝前衛同盟
영어의미역 Dongrae Anti-imperialism Avant-garde Alliance
이칭/별칭 적기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 운동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31년 9월연표보기 - 적기회 결성
개칭 시기/일시 1931년 9월연표보기 - 적기회에서 반제전위동맹으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1년 11월 - 부산 시내에 반제 격문 1,500매 살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2년 1월 - 반전 격문 1,300매를 부산의 중요 공장 지대에 살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2년 1월 11일 - 권동수 외에 다수의 조직원이 검거됨
최초 설립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60지도보기

[정의]

1931년 9월 동래소년동맹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부산 동래 지역에 설립한 독립운동 단체.

[개설]

동래반제전위동맹은 기관지 『적기 뉴스』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 절대 반대, 일본 제국주의 타도, 조선 독립 등을 주장하였다. 1931년 11월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여 부산 시내에 반제 격문 1,500매를 살포한 것을 비롯해, 1932년 1월에는 부산 지역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감행코자 반전 격문 1,300매를 주요 공장 지대에 살포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 출신들로 구성되었으며,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에 진학했던 최상규(崔翔圭)를 매개로 당시 조선 공산당의 재건 운동과 연계되어 있었던 경성제국대학 내의 성대반제부(城大反帝部)의 경남지부로서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1932년 1월 11일 반제 격문 살포가 단서가 되어 권동수(權東洙) 외에 다수의 조직원들이 검거되면서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된다.

[설립 목적]

동래반제전위동맹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동래소년동맹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소비에트 동맹의 방위, 조선 민족의 완전 독립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변천]

1931년 4월 초부터 비밀 회합을 거듭한 동래소년동맹 간부들은 7월 중순 연락부와 조직선전부 등을 비롯한 6개의 부서로 구성된 적기회(赤旗會)를 조직하였다. 적기회는 결성과 동시에 기관지에 해당하는 『적기 뉴스』를 발간하였다. 이후 적기회는 2개월이 지난 같은 해 9월 조직의 명칭을 ‘반제전위동맹’으로 개칭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래반제전위동맹동래고등보통학교 내에 사회과학연구회, 적색스포츠단, 수영무산청년회(水營無産靑年會), 기장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하고, 부산 시내에 각종 반제 격문을 살포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는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 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였다. 그 결과 학생 운동은 당시까지 지속된 지역의 청년 단체와 신간회 등과 같은 민족 운동 단체들과 연계된 공동 투쟁을 더 이상 실행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여건 하에서 학생 운동의 양상 또한 소수 정예의 비밀 결사 운동으로 전환하게 된다. 동래반제전위동맹은 청년 운동과 신간회의 민족 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새로운 독립 운동의 조직으로 출현한 반제 독립 운동 단체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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