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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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點德 |
영어음역 | Gim Jeomdeok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종우 |
[정의]
부산에서 성악과 평론 활동을 한 음악가.
[활동 사항]
김점덕(金點德)[1919~1997]은 1919년 6월 12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에 있는 고등음악학교와 중앙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해방 직후부터 부산의 경남공업고등학교·부산고등학교 등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하였다. 동시에 성악 활동과 평론 활동을 활발히 펼쳐, 초창기 한국 음악 평론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절친한 친구였던 테너 정복갑(丁福甲)이 6·25 전쟁 때 사망하게 되자 정복갑의 아내였던 피아니스트 한봉희(韓鳳姬)와 결혼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48년 11월 28일에 김점덕은 동광초등학교 강당에서 ‘슈베르트와 한국 가곡의 낮’이란 제목으로 독창회를 가졌고, 1949년 4월 16일에는 동광초등학교에서 열린 ‘예술의 대향연’[시와 음악의 회(會)]에서 김순남의 「진달래 꽃」을 불렀다. 1949년 5월 2일 YMCA에서 열린 문학 강좌에서는 김수돈[시인]·김정한[소설가]·홍일파[음악가]·이주홍[소설가] 등과 더불어 ‘문학과 음악’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55년부터는 부산 뮤직클럽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57년에는 부산교향악단 논설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발한 평론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57년 12월 27일에 있었던 ‘시벨리우스의 밤’에서 평론 「시벨리우스의 음악사적 위치」로 큰 주목을 끌었으며, 그해에 제1회 부산시 음악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1960년 8월 27일에 부산음악가협회의 총무를 맡았으며,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경남음악교육연구회의 부회장을 맡아 열정적인 활동을 계속하였다.
1970년에는 서울로 옮겨가 한국음악평론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각종 미디어에 음악평, 논설 등을 쓰고, 『한국가곡전사』, 『음악 대사전』 등의 편집에도 참여하는 한편 『한국가곡사』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1978년 12월 1일에는 귀향 독창회가 장정선의 반주로 부산 시민 회관 소강당에서 열렸는데, 「기다림」·「못 잊어」·「함박눈」 등 우리 가곡 14곡을 불렀다. 이렇듯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열정적인 귀향 독창회를 펼침으로써, 많은 후배 지역 음악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후 배도순(裵道淳)에 이어 부산원로음악인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97년 9월 14일 부산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한국가곡사』[과학사, 1989], 『광복 이후의 예술 음악의 발전: 제1장 성악곡』[한국예술총람, 한국음악협회편, 1991] 등이 있으며, 『음악 대사전』[편집위원회, 신진출판사, 1973]에도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57년에 제1회 부산시 음악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 『월간음악』에서 제정한 음악 공로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