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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538
한자 李俊達
영어음역 Yi Junda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소덕리 361-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 운동가|정치인
성별
대표경력 대저면장
출생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0년대 - 민주당 김해 갑구 부위원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정치 활동 정화법’ 공포로 정치 활동 금지
활동 시기/일시 1963년 1월 - ‘정치 활동 금지 해제’로 정치 활동 재개
몰년 시기/일시 1970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소덕리 361-6
활동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정치인.

[활동 사항]

이준달(李俊達)은 1906년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소덕리 361-6번지에서 태어났다. 대저동에서 농업과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토목 사업을 벌였고, 동아일보 대저지국을 개설하여 면민에게 신문 읽기를 권장하였다. 그는 문맹자를 위해 무료 대서를 해 주는 등 어려운 사정에 놓인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일본어를 잘 알면서 좀처럼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는 반일 사상가로 일제 당국에 알려져 요시찰 인물로 감시받았다.

해방 후 초대 민선 대저면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고, 대저에 있는 대상초등학교, 낙동중학교 사친회장을 6년간 맡아 2세 교육을 위해 후원하였다. 대저 상수도 공사 추진 위원장으로서 저수지 확보 및 수로관 설치 등을 추진하여 지역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이준달은 민주당 김해 갑구 부위원장으로서 정치 활동을 전개했으나 5·16 군사 정변 세력이 1962년 3월에 공포한 ‘정치 활동 정화법’에 따라 구정치인으로 분류하여 정치적 행동을 금지당하였다. 1963년 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구정치인으로 분류한 인사 171명의 정치 활동을 허용할 때, 이준달도 여기에 포함하여 정치 활동을 재개하였다. 1970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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