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82
한자 金琪三
영어음역 Gim Gisa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인천영화중학교 교장
출생 시기/일시 1901년 2월 5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징역 8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5년 3월 27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5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거주|이주지 일본 오사카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일본 오사카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활동지 오사카성결교회 - 일본 오사카
활동지 인천영화중학교 - 인천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기삼(金琪三)[1901~1965]은 1901년 2월 5일에 동래군 동래면 복천리 465번지[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5번지]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3학년이던 1919년 3월 13일 동래 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질 즈음인 1919년 3월 7일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가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면서 4학년인 엄진영(嚴進永)·김귀룡(金貴龍)·김인호(金仁浩) 등이 동래 의거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기삼은 동급생인 추규영(秋圭暎)·손영수·김원룡·정호종(鄭浩宗)·서진랭(徐鎭冷)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김기삼고영건(高永建)의 하숙집에서 주동 학생들과 독립 선언서 500여 매를 복사하고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대형기와 ‘오왕독살(吾王毒殺)’이라고 크게 쓴 격문 수백 매를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이 동래군청의 정문에 올라가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신호로, 김기삼은 주변에 모여 있던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배부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과 수비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김기삼은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기삼은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였다. 오사카[大阪]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오사카성결교회에서 일하면서 한국 교포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이 때문에 다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 받아 복역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인천영화중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6·25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1965년 3월 27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