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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정 사건 서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41
한자 京阪亭事件書類
영어의미역 Documents of the Drinking Scandal at Gyeongpan-jeong High-class Restaurant
이칭/별칭 경판정 사건·가이다막크호 수병 사건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간행자 부산 일본 총영사관
권책 1책
편찬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편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9년 7월 11일 - 경판정 사건 발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9년 11월 - 가이다막크호 수병사건 발생
소장처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지도보기
간행처 부산 일본 영사관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6지도보기

[정의]

1899년 부산항에서 일어난 경판정 사건에 대해 일본 측에서 작성한 보고서.

[개설]

1899년 7월 11일[양력 8월] 부산항에 있는 요정 경판정(京阪亭)에서 러시아 사관이 함께 술을 마시던 일본 기생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경판정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지 4개월 후인 11월에는 일본 거류지에 있는 송천정(松川亭)에서 부산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수뢰 구축함 가이다마크호[ガイダマック號]의 수병(水兵) 16명이 술을 마시고 나오다가 일본인과 충돌한 폭행 사건이 있었다[가이다마크호 수병 사건].

이 두 사건은 일본과 러시아 양국 간에 외교적 문제로 크게 확대되었는데, 이는 당시 남하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려던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의 정치적 관계와 민족 감정상의 대립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이들 사건으로 양국은 공동 진상 조사 위원회까지 구성하여 공동 조사를 벌였다.

[저자]

『경판정 사건 서류(京阪亭事件書類)』의 저자는 부산 일본 총영사관으로, 일본과의 통상을 촉진하고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1876년 일본에서 부산 내에 설치한 외교 관서이다.

[편찬/간행 경위]

『경판정 사건 서류』는 주로 피해자에 대한 조사서와 심문서, 진술서 등으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된 것이다.

[형태/서지]

표제는 ‘경판정 사건·가이다마크호 수병 사건’인데, 당시의 표제는 ‘경찰구신철(京察具申綴)’로 되어 있었다. 137장의 방대한 사건 보고서로, 일본어로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부산 영사관 나카무라[中村] 영사 대리가 서울의 일본 공사관 히오키[日置] 서기관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는 경판정 사건의 경위가 보고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경판정에 근무한 접대부 두 사람, 고용인인 한국인 등에 대한 심문서가 별첨되어 있다. 이에 대해 히오키 서기관은 경판정 전 종업원 및 접대부 등에 대해 경찰이 조사하여 조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의 지시서를 보냈다.

이후 나카무라 영사 대리는 “러시아 함장 고레츠가 러시아 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중 ‘러시아 사관이 접대부를 강간하려 했다’고 일본 측에서 고발했다는 내용은 사실무근으로 추호도 책임질 일이 없으며, 다수의 일본인과 경찰들이 러시아 사관의 폭행을 시인하고 있음에도 함장은 취중의 행위이니 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등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태도를 보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재차 올렸다. 이외에 부산 일본 영사관 고시지[越路] 서기생의 보고서와 서울 일본 영사관 하야시[林] 공사가 나카무라 영사 대리에게 보낸 사건 해결에 관한 지시서, 하야시 공사에게 보내는 나카무라의 회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 부동항을 찾아 남하한 러시아 함대의 수병들은 부산항에 상륙하는 일이 많았고, 일본인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당시 조선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갈등이 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이 바로 경판정 사건으로, 『경판정 사건 서류』에는 이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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