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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21
한자 金漢琦
영어음역 Gim Hang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40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나철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월평사립학교 교사
출생 시기/일시 1897년 12월 27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명정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범어사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82년 3월 25일연표보기 - 김한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연표보기 - 범어사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403
학교|수학지 명정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불교전문학원 - 부산광역시
활동지 월평사립학교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면 월평리지도보기
활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한기(金漢琦)[1897~1982]는 1897년 12월 27일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403번지에서 태어났다. 김한기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범어사(梵魚寺)명정학교에 재학 중이었으며, 서울의 중앙학림에서 파견된 김법린(金法麟)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를 중심으로 하는 만세 시위를 계획하자 여기에 동참하였다.

김한기 등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지만, 이 사실이 사전에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에 김한기는 3월 18일 새벽 동래구 복천동 불교포교당에서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 받고 대구감옥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범어사 불교전문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였고 월평사립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범어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였으며 1982년 3월 25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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