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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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聖彦 |
영어음역 | Jeong Seonge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나철회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성언(鄭聖彦)[1892~1952]은 1892년 7월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서 태어났다. 범어사(梵漁寺) 명정학교를 거쳐 범어사 지방학림에 진학하였으며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범어사의 3·1 운동은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4일 부산으로 돌아온 김법린(金法麟) 등이 독립 선언서를 전하면서 계획되었다. 이들은 3월 1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하다가 하루 전인 17일 밤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말았다. 범어사 동래포교당에 있던 이들을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吳啓運)이 밀고하였던 것이다. 주동자들이 검거되면서 만세 시위가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정성언은 검거를 피한 이들과 함께 18일 밤 동래 시장 사거리에서 독립 시위를 벌였다. 정성언은 시위 도중 부상을 당하였으며 철도병원에 피신하여 치료를 받고 있다가 일본 경창에 체포되었다.
정성언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대구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아직 수감되어 있는 독립운동가의 가정을 후원하거나 자녀들의 학비를 보조하는 등의 구호 활동을 하였다. 정성언은 해방을 맞이한 뒤 1952년 2월에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1970년 3월 1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에 건립된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 정성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