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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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龍九 |
영어음역 | Gim Yong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34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용구(金龍九)[1890~1963]는 1890년 2월 1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340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부산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인 양봉근(楊奉根)이 고향으로 내려와 구포면사무소 서기인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서울과 평양의 독립 만세 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이 계획되었다. 이들은 3월 29일 정오 구포 장터에서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에게 미리 제작한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김용구는 솔선하여 선두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옥겸(金玉兼) 외 11명의 주도 인물이 구포주재소에 구금되자, 김용구를 비롯한 시위 군중 1,200여 명은 구금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구포주재소로 돌진하였다. 이들은 주먹과 몽둥이로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투석으로 대항하였다. 김용구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대를 맞았다. 1963년 3월 2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8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