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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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泳敦 |
영어음역 | Min Yeongd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개항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민건호(閔建鎬)로, 민석호(閔奭鎬)에게 입양되었다.
[활동 사항]
민영돈(閔泳敦)[1863~?]은 1886년(고종 2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7년 4월 한림(翰林) 벼슬을 받았고, 6월 시강원 설서(侍講院說書)로 옮겼다. 1888년(고종 25)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 1889년(고종 26) 왕세자의 계강책자(繼講册子), 1891년(고종 28)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1893년(고종 30)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1894년(고종 31) 6월 동래 부사로 있을 때 민영돈은 “일본인이 전선을 가설한다는 핑계로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으나 변방을 지키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를 진압하지 못하였기에 황공한 마음으로 처벌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장계를 올렸다.
1896년(고종 33) 동래 감리 겸 동래 부윤을 지낼 때는 “6월 한 달 동안 영선동 좌기청(座起廳)[이방이 공무를 보던 곳] 모전답 200여 두락과 집 9채가 일본인에게 팔렸다. 일본인의 매입 행위를 금하지 않으면 절영도 섬 전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외무 대신 이완용(李完用)에게 보내 일본인의 토지 침탈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하였다. 1897년(고종 34) 비서원 승을 거쳐 중추원 1등 의관 칙임관 4등에 임명되었다. 1898년 특명 전권 공사 칙임관 4등, 1899년(고종 36) 궁내부 특진관에 이어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 칙임관 3등에 올랐다.
1901년(고종 38) 3월 특명 전권 공사로서 영국에 주재하며 겸하여 이탈리아에 주재하도록 명령받았다. 1904년(고종 41) 장례원 소경(少卿), 1905년(고종 42)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궁내부 특진관 칙임관 3등, 시강원 부첨사(侍講院副詹事) 등을 역임하고 10월에 강원도 관찰사로 나갔다. 1909년(순종 3) 규장각 지후관(祗候官)이 되었고 이어 칙임관 2등에 올랐으며, 1910년 4월 훈 2등에 서훈되었다. 민영돈은 고종, 순종 대의 민씨 척족의 한 사람으로서 영국, 이탈리아 등의 특명 전권 공사를 지내면서 개항기 외교 사절로 크게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