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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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秉弼 |
영어음역 | Jo Byeongpil |
이칭/별칭 | 성필(聖必),간산(幹山),문정(文靖)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개항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성필(聖必), 호는 간산(幹山). 시호는 문정(文靖). 아버지는 조구영(趙龜永)이다.
[활동 사항]
조병필(趙秉弼)[1835~1908]은 1871년(고종 8) 수릉 참봉(綏陵參奉)으로 황감제 문과(黃柑製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지내고 이듬해에 청송 부사가 되었다. 1874년(고종 11) 3월 병조 정랑이 되어 황해도 암행어사를 겸하였다. 1876년(고종 13) 동부승지로서 강화도 조약 체결을 전후하여 왕의 근신(近臣)으로 국정을 보필하였고, 이듬해 병조 참의가 되었다. 1883년(고종 20) 김옥균(金玉均), 이조연(李祖淵), 변원규(卞元圭) 등과 참의 교섭 통상 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가 되어 임오군란의 뒤처리를 하였고, 잠시 성균관 대사성을 겸하였다.
1883년(고종 20) 5월 동래부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동래 부사로 파견되어 난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1885년(고종 22) 부산항 감리 통상사무를 겸하였다. 그 뒤 이조 참의, 대사간, 좌승지, 홍문관 부제학 등을 거쳐 1892년(고종 29)까지 병조, 이조, 형조, 공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895년(고종 32) 8월 궁내부 특진관으로 진주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단발령에 반발하여 을미 의병이 봉기하자 도주하였다.
1896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고, 비서원 승(祕書院丞), 장례원 경(掌禮院卿), 궁내부 특진관, 태의원 경(太醫院卿), 중추원 의관, 시종원 경(侍從院卿)을 거쳤다. 1902년(고종 39) 홍문관 학사, 1904년 기로소 당상(耆老所堂上), 1905년(고종 42) 예식원 장례 경(禮式院掌禮卿), 중추원 찬의, 학부대신 서리에 임명되었다. 1907년(순종 1) 판돈령 사사(判敦寧司事)에 올랐다.
[학문과 저술]
1900년(고종 37) 조인영(趙寅永)이 보완하여 편술한 『풍양 조씨 세보(豊壤趙氏世譜)』를 보충하여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