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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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悳 |
영어음역 | Gim Yeongdeok |
이칭/별칭 | 수경(壽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개항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수경(壽卿). 아버지는 김익현(金翼鉉)이다.
[활동 사항]
김영덕(金永悳)[1859~1910]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877년(고종 14)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규장각 대교(待敎) 벼슬을 받았고, 1885년(고종 22) 여주 목사, 이듬해 이조 참의와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다. 1889년(고종 26) 잠시 동래 부사를 지낸 뒤 감리 부산항 통상사무로 옮겼다. 1891년(고종 28) 시강원 보덕(侍講院輔德), 1892년 홍문관 부제학과 이조 참판을 역임하고, 관제 개혁 직후인 1896년(고종 33)탁지부 협판에 임명되었다. 이후 1898년(고종 35) 경기도 관찰사, 1899년 충청남도 관찰사, 1900년 경상남도 관찰사로 나갔다.
1901년(고종 38) 궁내부 특진관, 1903년 시강원 첨사(侍講院詹事) 칙임관 3등, 그해 10월 사직서 제조 칙임관 3등, 1904년 궁내부 특진관 칙임관 3등, 1906년(고종 43) 강원도 관찰사 칙임관 3등 벼슬을 하였다. 1910년(순종 4) 조선이 일제에 강제 병합되자 이를 원통히 여겨 자결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김영덕의 집안도 크게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