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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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宣慰使 |
영어음역 | Seonwisa |
영어의미역 | Officer in charge of Encouraging the Missiona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흥숙 |
[정의]
조선 후기 일본 등 외국 사절을 응대하기 위해 동래 왜관에 파견된 3품의 관직.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전기에는 중국, 일본, 여진, 류큐[琉球] 등의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각 나라 사절에 대한 접대 의례는 조금씩 달랐으며 사절을 응대하는 외교 관리의 명칭도 달랐다. 원접사(遠接使)·접반사(接伴使)·영위사(迎慰使)·선위사(宣慰使) 등을 임시로 뽑았고, 이들은 조선 국경에 나아가 외국 사절을 맞이하고 접대를 주관하였다. 이 가운데 선위사는 중국 사절뿐 아니라 일본·류큐 사절이 올 때 파견되었는데, 중국의 경우는 2품 이상, 일본과 류큐 사절의 경우에는 3품의 조정 관리가 맡았다.
[담당 직무]
조선 전기 왜관(倭館)이 있던 부산에 일본 사절이 들어왔으므로 선위사가 파견되었다. 일본에서 사절이 오면 경상 감사가 예조에 알리고 예조는 선위사를 남해안에 있는 세 곳의 왜관에 파견하여 사절을 접대하고 그들의 상경(上京)을 돕도록 하였다.
[관련 기록]
기대승(奇大升)의 『고봉집(高峯集)』에 「선위사로 가는 최경숙(崔景肅)을 전송하며[送崔景肅宣慰之行]」라는 시가 들어 있다. 이 시에는 일본 사절이 오자 국왕이 말을 잘하는 유학자를 선위사로 뽑았다고 되어 있다. 일본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문식(文識)이 있는 문관(文官)을 선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숙주(申叔舟)가 일본에 관해 쓴 책인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의 「조빙응접기(朝聘應接紀)」에는 선위사가 왜관에서 연향(宴享)을 베푸는 모습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왕의 사신을 삼포(三浦)에서 연향할 적에, 선위사는 동벽(東壁)에 위치하고 상관인(上官人)과 부관인(副官人)은 서벽(西壁)에 위치하여 모두 교의자(交椅子)에 앉는다. 선위사의 향의(享儀)는 선위사가 선온(宣醞)[왕이 신하에게 궁중의 사온서에서 빚은 술을 내리던 일]을 가지고 삼포의 객관(客館)에 도착하여 중문(中門)으로부터 들어오면, 객사(客使)[외국 사절]는 대문(大門) 밖에 나가서 공손히 맞이한다.” 이 같은 내용을 통해 선위사와 일본 사절의 의례 절차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변천]
임진왜란 이후, 일본 사절의 상경(上京)이 금지되자 접대 의례에도 변화가 생겼다. 선위사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남해안의 왜관에서 서울까지 일본 사절의 왕래를 호송하는 것이었으나, 더 이상 일본 사절이 서울에 올라가지 않고 왜관에 머물게 되자 선위사 파견이 필요 없게 되었다. 반면 일본 사절은 대마도(對馬島)에서 오지만, 일본 국왕이 파견하는 국왕사(國王使)의 경우에는 선위사를 파견하여 다른 사절과 접대 의례에 차별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17세기 전반기에는 일본 사절이 올 때마다 사절의 성격과 유형을 파악한 후 선위사 파견 유무가 논의되었다.
1608년(선조 41) 일본 사절 현소(玄蘇)·평경직(平景直)·귤지정(橘智正) 등이 대마도에서 파견되었는데, 일본 국왕의 국서(國書)를 가지고 와서 선위사 이지완(李志完)이 파견되었다. 또한 1629년(인조 7)에는 대마도 현방(玄方)이 조선에 왔는데 대마 도주의 사절로 알고 조경(趙絅)을 선위사가 아닌 접위관(接慰官)이란 이름으로 파견하였다가, 현방이 다시 일본 국왕사라고 하자 선위사로 정홍명(鄭弘溟)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정홍명이 부산 왜관에 오자 현방이 실제로는 일본 국왕사가 아님을 알았다. 이에 이행원(李行遠)을 접위관으로 임명하여 일본 사절을 응대하도록 하였다.
일본 사절의 국서 소지 여부에 따라 선위사 파견이 결정되었지만, 실제로 1622년(광해군 14) 이후로는 일본 국왕사가 파견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사절은 대마도에서 파견하는 연례 송사(年例送使)·차왜(差倭) 등이었고, 조선에서는 이들을 접대하는 관리로 5품의 경접위관(京接慰官)·향접위관(鄕接慰官)을 왜관으로 파견하였다.
[의의와 평가]
선위사는 중국, 일본, 류큐 등 조선 전기 조선과 사대교린 관계에 있던 외국 사절이 조선에 왔을 때 이들을 접대하기 위해 파견한 사절이다. 특히 선위사가 일본 사절을 맞이하기 위해 부산에 내려왔을 때 이들이 부산의 명소에서 지은 시 등이 남아 있어 부산의 역사 및 부산 지역 고전 문학을 연구하는 데 또 다른 자료가 된다. 또한 선위사 연구는 중앙 조정에서의 외교 의례가 아니라 국경, 변방 지역에서 진행된 또 다른 형태의 의례를 연구하는 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