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76 |
---|---|
한자 | 天主敎徒李廷植斬首 |
영어의미역 | Execution of Catholic Yi Jeongsik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기독교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광안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손숙경 |
[정의]
1868년 동래 지역 천주교 신자인 이정식(李廷植)이 수영 장대에서 처형당한 사건.
[역사적 배경]
1866년(고종 3) 병인박해는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일단락되려던 병인박해는 프랑스 함대의 침입과 에른스트 오페르트(Ernest Jacob Oppert)의 남연군(南延君) 묘 도굴 사건 이후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박해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며 각 지역에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탄압을 받았다.
[경과]
이정식[1795~1868]은 동래부 동부 생민리 읍치에 거주하였다. 이정식은 나이 60세에 천주교를 수용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고 이 지역 천주교 회장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정식은 가족들과 함께 기장으로 피신했다가 그 뒤 1868년 봄에 울산으로 이주하였다. 박해가 점점 심해져 동래 뿐 아니라 인근 울산, 언양, 기장 등지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이때 이정식도 이정식의 가족 3명을 포함한 다른 교우들과 함께 울산에서 체포되어 동래로 이송되었다.
[결과]
1868년 동래 부사는 이정식 외 11명의 교우를 체포하여 47일 동안 옥에 가두고 태형과 협박으로 강요하다가 수영으로 넘겼다. 그 후 당시 경상좌수사 구주원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혹형을 가한 다음 배교하기를 강요하였다. 그 중 세 사람은 혹형에 못 이겨 배교하여 방면되었다. 그러나 이정식 등 8명은 신앙을 지켜 1868년 9월 20일[음력 8월 4일] 수영 장대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동래 지역 천주교 수용과 박해의 내용을 알려주는 이 사건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와 지역 사회의 동향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