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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14
한자 水營場臺-殉敎聖地
영어의미역 Sacred Place for the Martyred in Suyeong Jangdaegol village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4동 546-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손숙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
관련인물 이정식|이월주|박조이|이관복|이삼근|양재현|차장득|옥조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87년 6월 - 조성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7년 7월 - 광안성당 주임 신부와 청년 회원들이 장대석 8개, 기와 조각, 동전 등을 발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9년 - 수영 장대골 순교 성지 기념비 제막식 거행
현 소재지 수영 장대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4동 546-4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광안성당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4동 566-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4동에 있는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곳.

[개설]

장대(將臺)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돌로 쌓은 대(臺)를 일컫는다. 조선 시대에는 군영의 연병장 정면에 장대가 있었다. 연병장에서는 군사들의 열병 훈련 사영이 있었고, 간혹 이곳은 중죄인을 처형하는 사형장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수영 장대골은 병인박해 당시 경상 좌수영이 있던 곳으로 많은 천주교 교인들이 처형당한 순교 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에서는 병인박해의 여파로 일어난 1868년 무진박해(戊辰迫害) 때 동래 지역 전교 회장이었던 이정식, 이월주, 박조이, 이관복, 이삼근, 양재현, 차장득, 옥조이가 혹형(酷刑)을 당하고 군문 효수형(梟首刑)[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형벌을 이르던 말]으로 순교하였다.

[건립 경위]

수영 장대골 순교 성지가 밝혀진 것은 1977년 7월 17일, 당시 광안성당 안달원[베드로] 신부와 청년 회원들이 이곳에서 장대석 8개와 기와 조각 등을 발굴하면서였다. 그러나 이미 1950년대부터 이곳 천주교 교인들 사이에서는 이 일대가 옛 장대골 순교지라는 사실이 알려져 교회의 순교 복자 축일이면 여기서 순교자의 거룩한 넋을 기리는 예절을 지켜 왔다. 그러다가 1987년 1월 천주교 부산교구에서 수영 장대골 성역화 문제가 거론되면서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광안성당은 장대골 순교지와 이웃하고 있어 이미 1968년 순교자 성당으로 지정되었는데, 광안성당 교우들이 1987년 6월부터 성금을 봉헌하여 옛 장대골 순교지의 일부를 사들였다. 그리고 1988년 7월부터 천주교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순교 기념비 건립 및 순교지 환경 공사를 착수함으로써 순교 유적지로 개발되었다.

[위치]

수영 장대골 순교 성지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4동 546-4번지에 위치한다.

[형태]

약 530㎡의 부지 위에 기림비와 대형 십자가, 이곳에서 순교한 8명의 순교자 위패와 순교 당시 현장에 있던 장대석 표시돌이 설치되어 있다. 이와 함께 천주교의 기도 양식인 십자가의 길 성물과 성모상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2005년 천주교 부산교구 교구장의 승인을 얻어 장대골성지개발후원회를 발족하여 개발과 보존에 노력하고 있다. 이 후원회에서는 회원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현재 순례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경상 좌수영이 설치되었던 수영의 모습과 동래 지역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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